▲트럼펫을 부는 보석. 남원시 산내면의 카페 '플래닛커피' 에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공연한다.
임현택
[지난 기사] 도시 아닌 시골에서 재즈하는 뮤지션들, 왜냐면요 https://omn.kr/29l2f
재즈는 옥상에서 나누는 농담 같은 것
- 재즈의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
한결: "저는 원래 싱어송라이터가 되거나 인디밴드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재즈가 되게 싫었어요. 왜냐면 그동안은 정해진 음악만을 했었는데 재즈는 수업에 들어가면 갑자기 '솔로 해봐.' 이런 식으로 요구하거든요. 베이스 악기로 솔로 연주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식으로 갑자기 즉흥 연주를 강요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죠.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는 계속 연주자의 기회를 푸시하더라고요.
그렇게 재즈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무렵에 함께 다녔던 친구가 같이 재즈 스터디를 해보자 하면서 저를 이끌어줬어요. 그래서 20살부터 재즈를 시작한 거예요. 그 친구 계기로 유학도 가게 되면서 음악을 계속 하게 됐죠. 그때 재즈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재즈를 연주할 땐 기본적인 큰 틀만 잡고 세부적인 걸 정하지 않아요. 매번 연주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10분 전에 연주한 걸 다시 해보라고 하면 똑같이 못 해요. 저희는 그냥 코드만 보고 연주하는 거죠. 만약 새로운 외부 연주자가 오면 또 새로운 대화가 이어지는 거예요. 이분은 여기서 이런 걸 주는구나, 하면 그걸 캐치하고 배워가요. 그러니까 사실 저는 제가 공연하면서 저 스스로에 대해 만족해요. 내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재즈를 계속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냥 오늘 기분에 따라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게 재즈의 매력 같아요."
- 재즈는 즉흥적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연주자가 서로 호흡하고 대화하는 연주라는 대중적인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재즈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은 그걸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연주자들끼리 경험하는 짜릿한 순간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요? 어떤 느낌인가요?
한결: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코드를 연주하다가 변화를 줬어요. 근데 피아노가 그걸 캐치하고 저를 따라와줄 때. 제가 표현하는 특정한 리듬을 다른 악기가 같이 연주할 때 그런 걸 느껴요. 그래서 보석한테 부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프리하게 연주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느낌에 맞춰서 가죠. 그때의 기분에 따라 여기에서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하면 다 같이 조용해지고 여기서 다이나믹하게 가면 좋겠다고 하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연주하는 거죠."
보석: "만약 우리가 A라는 곡을 연주하는데, 합주 이후에 한 명씩 솔로 연주를 한단 말이예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정해진 멜로디가 아니라 그날 그순간 생각나는 걸 해요. 그래서 엄청 유명한 B라는 곡의 한 소절만 솔로에 넣으면 재즈에서는 '저 사람 되게 농담 잘한다' 이런 느낌을 주는 거예요. 그때는 B곡의 메인 멜로디를 코드만 맞춰서 연주해도 무방하거든요. 이런 게 위트있고 귀여워보이는 거죠."
한결: "미국에서는 그럴 때 관객에서 반응이 와요."
보석: "그렇게 진짜 농담 주고받는 느낌도 있고요. 만약 잔잔하거나 무게 있는 발라드를 하면,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밤 12시에 편의점 옥상에 둘이 앉아서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는 느낌. (웃음)"
- 재밌는데요? 그런 기분은 악기의 구성에 따라서도 변할 것 같은데, 두 사람의 악기가 독특하잖아요. 각자가 느끼는 트럼펫과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보석: "우선은 공통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재즈 씬에서 콘트라베이스나 트럼펫은 연주자를 구하기 너무 어려운 악기예요. 그런데 하필 저희 둘이 구하기 어려운 악기를 맡고 있으니 피아노나 기타 같은,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악기만 섭외하면 되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 연주회 페이가 너무 적어서 외부 연주자를 섭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되게 걱정되거든요. 둘만 가서 구성이 너무 단촐해지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런데 콘트라베이스의 물성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있어요. TV에서만 보던 악기 같은 포스가 있어서 빵- 소리만 나도 괜히 더 좋게 들리는 것도 있어요. (웃음) 희귀한 악기라서 많이 좋아해주시는 반응이 장점이에요."
한결: "제 경우엔 성향상 남을 도와주는 걸 되게 좋아해요. 케어해주는 역할을 좋아하는데 베이스가 딱 그런 포지션이에요. 남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포지션. 그런데 없으면 허전한. 그리고 베이스가 있으면 박자나 화성도 잡아주니까 다른 악기 연주자가 편하고요. 보통은 드러머가 그런 역할을 하는데 재즈 드러머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통 밴드 합주에서 베이스는 가위바위보 져서 하는 악기, 기타 수 모자라서 하는 거예요. (웃음) 심지어 비틀즈도 그렇게 시작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도 베이스 기타를 보면 그 앞에만 서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스트라이커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수비수를 하는 느낌이에요. 없어서는 안 되는 받쳐주는 울림이 좋았던 것 같아요."
- 보석이 느끼는 트럼펫의 매력은요?
보석: "저도 한결과 일치하는 성향이 있어요. 드러나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요. 감초 같은 조연 있잖아요. 그런데 재즈에서 트럼펫은 그야말로 주연 역할을 해야 하는 악기라서 이게 내 성격과 맞나 하는 생각도 자주 해요. 저는 드러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한편으로는 저한테 그런 모습이 없다고 할 순 없거든요. 예를 들어 편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 광대가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도 있는데 그런 모습이 되게 트럼펫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양가적인 마음이 트럼펫과 닮아있는 것 같아요."
한결: "보석없이 공연하다가 보석과 함께 공연하면 차이가 확 느껴지거든요. 한 번은 진주에 공연이 있었는데, 그전엔 한 번도 앵콜이 나오지 않다가 보석의 트럼펫이 합류하고 바로 앵콜이 나왔어요. (웃음) 이런 방점, 중심을 딱 잡아주는 트럼펫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꾸준한 연주의 소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