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우리 아동청소년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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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 서울시는 "2023 서울시 아동종합실태조사"를 발표했습니다. 관련 내용을 보면 엔데믹 이후 행복도는 상승한 반면에 우울감과 불안감은 낮아졌다는 긍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동청소년의 행복도와 관련된 다른 조사연구결과는 대부분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은 세이브더칠드런의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 35개국 중 31위, OECD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에서 주관적 행복감이 22개 국가 중에서 22위로 나타났습니다. 초록우산의 "2024 아동행복지수"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행복도는 100점 만점에 45.3점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사실 이런 조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우리 아동청소년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잠도 못 자고 놀 시간과 장소도 부족하고 공부 압박은 점점 커지고 아이들이 행복할 요소가 별로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과 일상을 통해 느끼고 알고 있습니다. "요즘 애들이 너무 스마트폰만 본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 "부모의 등골 브레이커", "소비주의에 물들어있다" 이런 비판들은 사실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사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농구장 폐쇄하는 어른들, 하루라도 여행 가고 싶은 아이들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에서는 몇 년 전 어느 지역에서 아동청소년 행복도조사 및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제시하면 우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행복도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과도한 학습시간, 성적 경쟁, 학교폭력 등이 맞물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다만 중학교 1학년 시기만 오히려 초등학교 6학년보다 행복도가 반짝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인터뷰를 해보니 결론은 자유학기제였습니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기말고사의 부담에서 벗어나 토론과 실습 중심의 참여형 수업과 진로탐색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는 시간입니다.
과거 어느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특이하게 6학년 때 행복도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6학년 학업성취도 평가"(year 6 SAT)라는 시험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아동청소년은 내내 시험에 시달리다가 자유학기제에만 잠시 부담을 피할 수 있으니 역으로 갑자기 행복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흥미로운 것은 청소년들과의 인터뷰에서 나타났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청소년들이 원하는 행복 정책을 물어봤는데 첫 반응은 자신들이 제안해도 안 될 것 같다는 불신이었고 두 번째 반응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멀면 가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면서) 농구장 등 운동시설이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른들이 해주겠냐는 것입니다. 그때 학생들이 한 이야기가 잊히지 않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농구장도 어른들이 시끄럽다고 폐쇄했는데 과연 우리가 요구한다고 새로운 농구장이 생길 수 있을까요?
연구 때문에 전국적으로 다녀보면 아이들을 위한다고 공부방(?)을 만드는 어른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위한다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 시간, 놀 공간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못해 야박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아동청소년들은 어른들을 불신하고 그들의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이렇게 자라 나중에 어른이 된다고 해도 이런 마음 상태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요즘 MZ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당혹감과 비판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비판 자체에 대한 평가는 제외하더라도 그런 MZ 세대를 만든 것은 바로 기성세대이고 그들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서 가슴이 먹먹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원했던 행복 정책 중에 하나는 정말 소박했습니다.
친구들과 1박2일이라도 하룻밤 자면서 같이 놀다 오고 싶어요.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친구가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행복한 기억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수학여행과 학교 밖의 활동들이 중단되거나 최소화되었고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이러한 흐름이 강화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초중고에서 학교 밖에서의 활동이라는 것은 사실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귀한 기억이나 경험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전의 가치가 최우선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학생안전을 명분으로 어떤 대안적 시도도 없이 학교 안에 머무르는 너무 손쉬운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