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텃밭을 바라보는 노부부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텃밭 농사를 짓는 노부부
오창경
"항상 삼시세끼를 잡곡밥에 콩을 넣어서 먹고 있어. 옛날부터 그렇게 먹었으니께 먹는겨. 영감이 있으니까 세 끼를 꼬박 차려야 혀. 그려도 음식 타박은 안 하시고 아무거나 잘 드셔유."
김씨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남편을 위해 제철에 나오는 강낭콩이나 서리태를 넣은 잡곡밥에 생선과 조개류가 들어간 밥상을 차린다. 부부는 육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두 점 정도만 먹으면 질린다고 한다.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와 계절 나물 반찬들로 밥상을 차려 오순도순 식사하고 들깨, 참깨, 서리태를 심은 밭에 나가서 풀도 매고 가꾸는 일로 소일한다. 최근에도 참깨가 익으면 베어내고 들깨 모종을 심을 준비를 해놓았을 정도로 아직도 밭일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다.
75년 전, 한 동네 살던 21세 총각과 19세 아가씨가 혼례를 올렸다. 한동네에 살았지만 둘은 서로 잘 알지도 못했고 부모끼리 말이 오가서 맺어지게 되었다. 각시의 부모는 큰딸이 멀리 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동네에 점 찍어 둔 총각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부모들은 따질 것 다 따져 봤는지는 모르지만 혼인의 당사자들은 정작 아무것도 모른 채 혼인 날 만났고, 그랬어도 한세월을 잘살고 있다. 삼신할미가 점지해주는 대로 4남 4녀를 낳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장녀를 낳고 한국전쟁 중이던 24세에 군대에 간 박철순씨가 30세에 제대할 때까지 외에는 지금까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김옥윤씨는 남편이 군대 생활하는 동안 갓난 딸과 시부모님, 같은 동네에 사는 친정 부모님까지 건사하느라 전방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다.
"시부모 모시고 살림살이하며 틈틈이 베틀에서 여름에는 모시와 삼베를 짜고 겨울에는 무명베를 짜며 살았지."
항상 미소가 머무르는 얼굴에 조용한 말투의 소유자인 김옥윤씨는 살아온 날 중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베를 짜느라 어깨 연골이 다 닳아서 팔을 잘 들어 올리지 못하면서도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서 세월 탓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우리 논의 못자리가 새푸러니(새파랗게) 자리를 잘 잡았네. 안 사람이 혼자 고생하네."
하늘에서 논을 내려다본 박철순씨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호탕한 웃음과 유쾌한 말씨의 96세의 박씨는 광주 육군 항공학교에서 정비사로 군대 생활했던 이야기를 꺼내자 여느 남자들처럼 눈빛마저 형형해졌다. 가끔 조종사와 함께 L-19기를 타고 고향 마을 근처 하늘을 날게 될 때면 조종사는 일부러 저공비행을 해서 그의 논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