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산 김남주 시인의 옥중시전집
이용석
시인이 왜 감옥에 가는지, 왜 감옥에서 시를 쓰는지 궁금한 마음을 붙잡고 시집을 찬찬히 읽어가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수능 공부하면서 만난 시들과는 너무나 달랐고 시에 대한 시인의 말도 너무나 생경했다.
김남주 시인은 "왜곡된 역사와 현실을 바르게 설정하고 지배계급의 허위 이데올로기를 폭로하여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방편으로 나는 시라는 무기를 잡았다. 다시 말해서 나는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시를 썼다."( <저 창살에 햇살이> 머리말 중에서)고 말했다.
"지배계급의 허위 이데올로기", "혁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 같은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 사람이 시를 무기 삼아 혁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시가 혁명을 위한 도구라니. 자신이 시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혁명이 나의 길이고 그 길을 가면서/부러진 낫 망치 소리와 함께 가면서/첨으로 시라는 것을 써보게 되었다고/노동의 적과 싸우다 보니 농민과 함께 노동자와 함께/피흘리며 싸우다 보니/노래라는 것도 나오더라고 저절로 나오더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 중에서).
세상에 이런 시도 있구나 싶었다. 팔딱팔딱 살아있고 입에 착착 감기는 단어와 표현들이, 자본가와 정치인들과 경찰들을 향해 이글거리는 분노가, 패배한 혁명전사의 절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상과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을 설명할 언어가 없던 나에게 김남주의 시는 마치 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일한 우리 아빠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야 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니 뭐니 해도 재벌집 사람들은 흥청망청 돈 잘 쓰고 사는 이따위 세상을 확 갈아엎고 싶던 나는 김남주처럼 시인이 되어, 아니 혁명가가 되고 싶었고, 혁명가가 되기 위해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남주 다시 읽기
그러니 대학에 입학해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김남주뿐만 아니라 박노해, 백무산 같은 시인의 시도 열심히 찾아 읽었다. 그러다가 조금 김남주 시인의 시와 거리감이 생긴 것은 병역거부를 결심하면서부터다. 돌이켜보면 나는 태생적인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평화주의자가 된 사람이었다.
세상과 권력자에 대한 분노는 여전했지만 싸움의 방식에 대해 생각이 달라져 갔다. 병역거부자가 되어 가는 과정은 저항이 폭력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고, 폭력을 수반하지 않은 다양한 저항의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 이상 "조직생활에서 그는 사생활을 희생시켰다/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기꺼이 해냈다"('전사1' 중에서) 같은 구절에 가슴이 설레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태도가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직 문화를 만드는 거라는 비판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도 했다.
물론 어떤 시들은 그전보다 더 탐독하게 되었다. 특히 감옥생활을 읊조리는 시들이 그랬다. 나는 병역거부로 고작 1년 6개월 실형 선고를 받았고 내가 살았던 2000년대 감옥은 김남주에게 종이와 연필조차 주지 않았던 군사독재 시절의 감옥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겠지만, 감옥이라는 속성상 속절없는 고립감과 외로움이 불쑥 찾아오는 날들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친구들의 편지를 꺼내어 읽는 일과 김남주의 시를, 김남주를 통해 알게 된 브레히트, 네루다 같은 시인의 시를 읽는 일뿐이었다.
인천구치소에서 군산교도소로 이감 갈 때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이 가을에 나는 푸른옷의 수인이다/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이 가을에 나는' 중에서) 김남주 시인의 마음을 따라 읽었고, 독방에서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조그맣게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보면서 김남주의 시 '창살에 햇살이'에 안치환이 곡을 쓴 노래를 조용히 부르곤 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졌다. 그렇게 감옥에서 만난 김남주는 전투적인 혁명시인의 얼굴보다는 따뜻한 온기를 품은 서정시인에 가까웠다.
오랫동안 김남주의 시와, 아니 시 자체와 멀리 떨어져 살았다. 드문드문 시를 읽더라도 예전처럼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챙겨보지는 않는다. 그러다 문득 올해가 김남주 시인의 30주기라고 해서 고등학생 때 산 시집을 다시 꺼내 읽어봤다.
김남주 시인의 시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혁명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내가 생각했던 혁명과 지금 평화활동가인 내가 생각하는 혁명은 아주 많이 다르다. 이제 나는 혁명이라는 말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걸 혁명이라고 부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또한 지금의 나는 김남주를 통하지 않더라도 나의 생각과 감정을, 분노와 열정을 표현할 언어가 있다. 김남주는 그대로일지 몰라도 내가 달라졌기 때문에 1997년 내가 만난 김남주는 이제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평화활동가로서 다시 김남주의 시를 읽으면서 시가 그의 싸움의 무기였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 김남주 시인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시만큼 비폭력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무기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세상이 달라졌고, 시대가 바뀌었고, 착취의 방법이 달라졌지만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전쟁도 불사하는 세상이라는 건 그대로다. 그 세월 동안 한국은 민주주의를 억누르기 위해 총칼을 휘두르던 나라에서 돈벌이를 위해 총과 칼을 다른 나라에 파는 나라로 바뀌었다. 폭력의 양상도 내용도 바뀐 시대에 과연 평화활동가들의 무기는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김남주의 시는 여전히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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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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