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교는 오후 1시에 끝난다는 안내가 왔다. 오후 1시라니. 이건 너무 이르잖아? 일하는 부모들은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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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두 시간 사용가능한 육아시간을 내가 쓴다고 해도, 오후 4시는 되어야 퇴근 가능하다. 그러니 오후 1시에 끝나면 3시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조차 없는 부모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이래저래 부모들에게 방학은 고통의 시기임이 분명했다.
방학 동안 수업 시간 변동이 있는지 알아보기 태권도 학원에 전화를 해보았다. 방학이 짧기도 하고 여러 학교의 방학을 맞출 수가 없기에, 평소랑 동일하게 운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평소 아이가 관심 있어하던 축구교실에도 전화를 해보았는데 화, 수에는 2시 30분, 목, 금에는 4시 30분이라고 했다. 돌봄 공백을 메우기에 학원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게다가 이미 매일 가는 태권도 도장도 있어 그것과 시간을 맞추기에도 애매했다.
방과후학교와 학원 일정이 있으니 방학 통째로 아이 조부모님댁에(친가든 외가든)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할수록 학교를 마치고 태권도 학원 가기까지 2시간의 공백을 메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락일지언정,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러 방학이 되었고 아이는 일단 집에 혼자 있어 보기로 했다. 그전에도 집에 혼자서 있어본 경험이 있으니 두 시간 정도는 괜찮을 거 같다고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살짝 불안했지만, 차분하게 답하는 아이 덕에 소란했던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단, 비가 내리기 전까지.
방학하고 3일째 되던 날 아이 하교 시간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은 있으니 집에 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싶었는데, 하늘이 금세 어두컴컴해지고 바람이 부는 게 날씨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아파트 공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천둥이 쳤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멈출까) 무서워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간다고도 말했다.
'비가 계속 많이 오면 태권도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곧바로 다시 전화가 왔다. 조금 전까지도 의연했던(의연한 것 같았던) 아이가 금방 울 것처럼 겁을 먹은 목소리로 "엄마, 나 무서워! 이상한 소리가 들려! 으아! 으아! 엄마 어떡해! 살려줘!" 하는 것이 아닌가. 바사삭. 잘 잡고 있던 내 정신줄, 멘탈이 급속도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민감해서 외부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음에 쉽게 놀라고 움츠러들곤 했다.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고 외출하겠다고 복무 결재를 올린 뒤 집으로 출발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아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 뒤라 돌아올 때는 아이와 함께였다.
낯선 사람들 사이 쭈뼛쭈뼛해하는 아이에게 동료가 탕비실에 있던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을 건네주자 아이도 긴장을 풀었다. 동료는 일곱 살 아이를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보내고 있어 더욱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아마 안타깝게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녀 역시 이 상황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이날 이후,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고 아이는 '방과 후 사무실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아이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