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풍경(자료사진). 엄마는 경북 의성이라는 작은 산촌 마을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bluecanis on Unsplash
엄마는 경북 의성이라는 작은 산촌 마을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그 유명한 'K-장녀'인 셈이다). 그 시절, '살림 밑천'이라고도 불리던 맏딸 답게, 엄마는 일찍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그 돈으로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건사했다. 다행인 것은 엄마의 여동생들, 두 이모가 그런 엄마의 희생을 고마워하고 지금까지도 잘 챙긴다는 것이다.
관절염으로 힘들 때 같이 병원을 동반한 것도, 농번기마다 같이 과실을 따겠다고 팔을 걷고 나선 것도 모두 두 이모들이었다. 어찌나 우애가 깊은지 자매 없는 사람 서러워 못 살겠다고 내가 대놓고 말할 정도다. "우리 언니 고생하니까", "우리 언니 힘드니까"가 입에 배어있다.
올여름, 엄마의 여름 휴가를 챙긴 것도 이모들이었다. 남들 다 간다는 피서 한 번 못 간 엄마가 안타까웠는지 세 자매는 함께하는 여름 휴가를 계획했다. 시기는 지난 8월 중순, 장소는 울산이었다.
세 자매는 울산, 영천, 대구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데 최근 큰 이모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한동안 만남이 뜸했었다. 몸이 좋지 않은 큰 이모를 위해 큰 이모집이 있는 울산으로 휴가 장소를 정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나는, 딱히 해 줄 게 떠오르지 않아 다 같이 식사나 하시게 용돈을 보내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내 얘길 들은 남편은 다른 의견을 냈다.
"돈 드리는 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이모님과 어머님이 절대 본인 돈 내고는 안 하실 것 같은 걸 선물하면 어때?"
"그게 뭔데?"
"음... 예를 들면, 호캉스(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것)?"
"에이, 무슨... 멀쩡한 집 놔두고 그런 곳에 돈 쓰는 거 다들 싫어하셔!"
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싫어하실 것 같다고. 남편이 대꾸했다.
"이모님 몸도 안 좋으신데, 집으로 가면 더 힘들지. 세 자매가 오붓하게 쉬면서 얘기 나누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내가 찾아볼게."
휴가날 걸려온 전화, 쨍쨍한 목소리에 긴장했는데
몇 번이나 말렸지만, 남편은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그리고 몇 분 뒤 호텔 예약 확정 문자를 보내주었다. 4성급 신상 호텔에다, 바다가 코 앞이고 전 객실이 씨뷰(sea view, 바다 뷰)라는 점을 강조했다. 가격 역시 서울에 비하면 싼 편이었다.
나는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이모에게 전달했다. 역시나, 이모는 예상대로였다.
"야야, 느그가 무슨 돈이 있다꼬! 멀쩡한 집 놔두고 호텔이 뭐꼬? 당장 취소해라."
"이모님, 취소가 안 돼요. 안 가시면, 돈 그냥 날리는 거예요."
남편과 한참을 전화로 실랑이 한 끝에 이모도 결국 OK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환갑을 넘긴, 그것도 호텔 이용이 익숙지 않은 세 자매가 체크인을 할 수 있느냐였다. 급히 이모 딸인 사촌 동생에게 연락했다. 사정을 안 사촌 동생은, '그거 너무 좋은 아이디어네요'라며 자기가 전부 알아서 하겠다고 우릴 안심 시켰다.
휴가 당일. 나는 조금 걱정이 됐다. 아끼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엄마인데, 돈 낭비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엄마의 못마땅한 말투가 벌써 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체크 인 시간이 지나고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괜히 긴장이 됐다.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 쨍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지야! 우린 진짜 몰랐데이. 큰 이모가 말을 안 해줘가. 밥 묵고 어디 좀 가자 캐가 따라왔더니, 우릴 호텔로 끌고 와서 깜짝 놀랐다 아이가. 세상에 세상에, 바다도 이래 보이고... 욕조도 있고... 어머 어머 어머...."
작은 이모의 소란스러움에 이어 엄마의 뭉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이고, 백 서방은 이런 대가 있는지 와보지도 않고 우에 알고 예약했노. 세상에... 희안테이...."
깔깔 대는 웃음소리에 이어 다음은 큰 이모였다.
"하하하, 영지야, 내가 느그 엄마랑 작은 이모한테 서프라이즈~ 했다. 백 서방이 다 준비한 곳이라고... 다들 와 저카노? 우하하하 영지야 고맙데이, 여기 너~~ 무 좋다. 이야~ 우리가 느그 덕분에 이래 호강한다! 우리 조카, 조카사위 최고다!"
세 자매의 시끌벅적함이 귀를 아프게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