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메모지달력 뒷면에 쓰고 계신 어르신
최은영
나는 복지관에 오는 어르신들은 모두 한때 공부를 좋아했던 분인 줄 알았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를 쓸 때도 내 입맛에 맞게 가공하고는 한다. 공개적인 글쓰기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었나 보다.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 공부를 좋아하는 마법은 있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강사도 배운다, 어르신들로부터
그랬기에, 시절이나 형편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라고 툭 던진 한 문장이 마치 잃어버렸던 진실의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그 조각을 이제는 혼자 찾을 때도 된 거 같은데, 늘 이렇게 어르신들의 무심한 한 마디에 기대어 찾는다. 강사로 왔으면서도 나도 꼭 하나씩은 배워간다.
키워드 : 행복. "남편이 57세에 치매가 왔다. 80세에 (돌아)가셨다. 아내로서 20년 간 간병하면서 내 삶은 없었다. 남편이 떠나고 1년이 됐다. 못해 준 게 생각나기도 하지만 날개를 달기도 했다.
수묵화로 행안부 장관상을 받았다. 배드민턴, 스키, 파크골프, 수영, 스케이트, 농구, 배구, 탁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 지금은 행복하다."
글로 정리하기 전에, '글에 구체적인 숫자가 들어가면 더 생동감이 생긴다'는 말을 드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숫자가 가득한 글이 나왔다. 그런데 그 숫자가 담긴 삶에, 글이 주는 먹먹함에 교실 여기저기에서 탄식과 한숨이 흘러나온다.
이 어르신의 키워드가 '행복'이다. 20년 간 내 삶이 없던 사람이 여덟 개의 운동을 자유자재로 즐기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정말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될 만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