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은 획일적인 문제 풀이 수업으로 황폐화한 교실을 살리겠다며 지난 2007년 처음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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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 같은 학종...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학생부종합전형(학종)도 수명을 다한 듯싶다. 취지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공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다 온갖 편법이 난무하면서 배가 산으로 가버린 형국이 됐다. 이 와중에 '구관이 명관'이라며, 수능을 넘어 과거의 학력고사 체제로 회귀하자는 황당한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학종은 획일적인 문제 풀이 수업으로 황폐화한 교실을 살리겠다며 지난 2007년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시행착오를 거쳐 2013년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고, 이젠 대입 전형의 대세가 됐다. 상당수의 대학이 입학 정원의 절반 이상을 학종으로 선발하고 있다.
서열화한 학벌 구조가 공고한 상황에서 학종의 한계는 분명했다. 학업 역량 외 다른 재능을 전형 자료로 활용하는 방식이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고 여론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왔다. 흥미와 적성, 잠재력 등 계량화할 수 없는 역량은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주관'은 '불공정'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어차피 전국의 모든 인문계고등학교가 진학 실적에 목매단 마당에 대입 전형의 변화는 학교의 '적응력'만 키운 꼴이 됐다. 학종이 수업 방식의 변화를 유도했을지언정 정작 아이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를 높이지는 못했다. 되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고통을 짊어지게 했다.
학종의 가장 중요한 평가 자료인 생활기록부의 내실을 위해 비교과 활동도 챙겨야 하고, 수능 준비에도 소홀할 수 없다. 내신 성적과 비교과 활동, 수능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한다며, 아이들은 이를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 불렀다. 언제부턴가 '사람 잡는 학종'이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학종을 포기하지 못한다. 학교생활에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악랄한 대입 전형이라고 볼멘소리하지만, 그렇다고 수능에 다걸기 할 순 없다고 토로한다. 내신을 포기하고 '정시 파이터'로 나서려면 최상위권이 태반인 'N수생'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곧, 아이들에게 학종은 '계륵' 신세다. 학종을 대비하자니 3년간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 하루하루를 수험생으로 살아야 하고, 수능에 다걸기 하자니 위험천만한 도박이어서다. 아이들 대부분이 학종과 수능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생활을 하는 이유다.
의미 없어진 생기부, AI 안 쓰면 '뒤떨어진 사람'?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학종은 이미 도입 당시의 '신선함'을 잃었다. 교사들 사이에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통해 개별적 역량을 간파해 내려는 노력을 더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계량화된 내신 성적을 보완하고 돋보이게 하는 '추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활기록부의 '품질'은 내신 성적과 정비례한다. 대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비교과 활동도 열심히 참여하지만, 어쨌든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 등을 쓸 때 성적을 고려해야 뒤탈이 없다. 성적으로 줄 세우려는 관행이 뿌리 깊은 데다, 학종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워낙 큰 탓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조차 성적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하위권 아이들은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대학 진학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은 성적보다 등록금이 더 중요하다고 선선히 말한다.
교사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극소수 교과별 '덕후'를 제외하곤 생활기록부 기록의 '마지노선'은 4등급 안팎이다. 곧, 상위 40% 이내에 들지 못하면, 교사들은 웬만해선 생활기록부 작성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그래봐야 대입에 별 효용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수업 중 아이들이 활동한 내용을 적고 간단한 의견을 다는 정도로 대강 마무리된다. 하위권 아이들의 생활기록부에 상대적으로 오탈자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그들 중엔 학년 진급 전 각자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살펴보지조차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무색무취'한 생활기록부는 그렇게 양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