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책 표지
청하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 의식을 자극하는 주장
사회적으로 성을 억압하고,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불필요하게 나눈다는 주장은 도리어 오늘에 이르러 상식이 됐다 해도 좋겠다. 인간의 청소년기를 지옥과 같다 주장하는 챕터에선 여러 사례를 들어 기성세대가 청소년기의 성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저들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깊은 고민 없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금욕주의적 삶을 강요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삶의 방식도 아닌데 말이다. 미성년자가 성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존재라는 성 관념이 인류 역사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으며, 열 살만 넘어도 성인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있었다는 주장의 일면은 오늘 돌아보아도 여전히 급진적인 구석이 없지 않다.
그러나 감추고 쉬쉬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성 담론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오늘날 매체의 홍수 속에서 실현되는 모습이 흥미롭다. 그로부터 우리가 일찍이 우려한 도덕의 멸실이 그만큼 나타나고 있는가. 적극적인 성담론과 책임감이 별개의 것이 아니란 것을, 쉬쉬하는 대신 꺼내어 더욱 활발히 이야기해야만 왜곡 없이 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그는 거듭 강조한다.
물론 공감하는 대목보단 반박하고 싶어지는 부분이 훨씬 많은 책이다. 그것이 그대로 마광수를 읽는 즐거움이란 걸 그의 애독자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남이 듣기 좋은 글만 쓰는 것이 미덕이고 더 나은 작가인양 추켜세워지는 세태 가운데서, 웬만한 비판쯤엔 즐기듯 부딪치는 그의 글이 매력을 뿜어낸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의미가 없다며 배부른 돼지가 그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어떠한가. 평소 개인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저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 만한 일을 찾아 그에 투신한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의미가 없다고 단정 짓는 과정이 파격적이고 이색적이다. 누군가에게는 잘 먹고 잘 섹스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겠으나 또 다른 누구에겐 형이상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것도 최선의 삶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애써 철학이 먼저 가고 삶이 뒤따르는 삶을 평가절하하니, 이상이 저기 높이 있는 독자라면 문장 한 줄 한 줄마다 격렬히 드잡이질 하며 읽어내릴 수도 있겠다.
인류는 발전하는가, 멈춰섰는가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장 또한 흥미롭다. 저자는 '서양 중세기의 미신적 신권주의나 마녀사냥 식 도덕적 테러리즘이 현대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역사발전론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교회가 유일한 진실로 군림하던 시기의 압제에 비해 현대사회가 훨씬 개방되고 다양성이 인정된 사회라는 걸 부인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여전히 전과 같은 왜곡과 압제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가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한 일이 아닌가.
저자는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는 토인비의 유명한 명제를 언급하며 마치 그가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주장한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토인비는 인류가 반드시 멸망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잦고, 그리하여 반복적인 흥망의 순환을 거쳐야 했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그는 오히려 역사를 앎으로써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문명이란 도전에 대한 응전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역사는 발전할 수 있다. 발전해야만 한다.
또한 예술과 문화를 성적인 본능적 욕구를 은밀하게 배설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엇으로 보는 태도는 다분히 마광수스러우면서도 편협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페티시의 대상이 다양하듯 인간의 욕구 역시 매우 다양한데 예술과 문화의 파생원인을 오직 성욕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편협하지 않은가. 몹시 흥미롭긴 해도 말이다.
<인간론>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세상을 대하는 마광수 철학을 살필 수 있는 저술이다. 첫 판이 나오고 수십 년이 지나 고전축에 드는 이 저작은 여전히 그 사고의 파격에 있어 희귀하다 해도 좋을 만큼 흥미롭다. 놀랍게도 오늘의 서점가엔 마광수가 살고 쓰던 그 시절보다도 평범하고 안이한 글이 넘쳐난다. 더 자유로워졌으나 그 사상의 전개는 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지지 않았는가를 떠올린다.
책 가운데 여러 면모를 가만히 들여다보자니 조금의 불편에도 한없이 민감한 오늘의 독자에게 이곳이 어떻고 저곳이 저렇다며 뜯기고 씹힐 구석이 수두룩한 걸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의 작가는 더 자극적이고 파격적이며 거침없는 생각을 활자로 적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그건 과연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류는 진보하지 않는다는 마광수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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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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