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진상으로 보이는 고인돌 유적지
완도신문
1948년과 1990년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항공사진에서의 현황은 논과 밭 경작지로 수많은 고인돌이 산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해서 발간한 완도군의 문화유적 기록에는 완도읍 중도리의 동촌고인돌을 등록했고, 완도서초등학교 동쪽으로 약 700m 지점 밭에서 4개의 고인돌이 확인된 것으로 적혀있다. 그리고 1948년~1990년 중도리와 사정리의 항공사진과 중도저수지 항공사진을 보면 고인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산재한 모습이 뚜렷하다.
또 중도리 동쪽 초개산과 서쪽 구릉사이에 형성된 곡부지형을 따라 도암천이 흘러 중도저수지에서 합수하여 남해로 흐르는 곳에도 고인돌이 분포한다.
1918년 근대지도에서는 현재 저수지 쪽에 논 경작지가 형성된 모습이며, 그 아래 남쪽 방향으로 간척지가 형성된 모습이 보인다. 이에 중도저수지 수면 아래에 있는 고인돌의 경우 형성 당시에는 지표면 상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암마을 회관 맞은편에는 고인돌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석재가 산재해 이곳 숲에 있는 바위는 채석장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망석리 입구 수로에도 고인돌의 뚜껑돌로 사용되었을 것처럼 보이는 석재가 있는데, 주민들은 이 돌을 바닷가 쪽에서 주어다가 가져다 놓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완도읍 중도리에 있는 고인돌은 대부분 방치되어 훼손되거나 소실되는 등 관리가 매우 열악한 상태다
이에 반해 마을 주민들의 고인돌에 관한 인식과 국가유산에 대한 자긍심과 보호와 보존인식이 강하며, 수준 높은 문화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연구원측은 전했다.
따라서 향후 고인돌과 관련한 유적조사에 적극성이 규명되어 행정에서 보존 대책을 마련하면 좀 더 안정적으로 선사 유적을 보존하고 지켜나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현재 완도읍 중도리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관리상태가 전무하다. 향후 매장문화재 정밀조사가 실시되면 명확한 성격을 규명하고 조사 성과에 맞춰 학술대회를 열어 우리 지역 선사 유적의 분포도와 특징적인 것을 자료화할 수 있을 것이며, 지표조사를 거쳐 시굴조사 발굴조사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상태이다.
더불어 고인돌의 보호 관리를 위한 이전과 복원을 통한 정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완도읍 중도리에서 이 번에 확인된 고인돌은 산발적으로 산재하며, 대부분 군집을 이루는 모습이다.
다만, 현재 조사 확인된 고인돌은 장기적인 훼손 상태를 보이고 있다. 복원과 함께 공원화 하여 장소 이전으로 관리의 진행이 빠르게 진행되어야 할 상황이다.
이번 조사 지역인 중도리 고인돌의 경우에는 마을의 지명 유례와 마을에 구전된 전설 등에서 바위 숭배사상이 뚜렷이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미 선사시대부터 이곳에서는 인류가 해양세력을 이루고 살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확인됐다.
중도리 선사 유적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앞으로 더 확장해서 관내 고인돌을 찾아낸다면 기존에 조사된 유적과 함께 완도의 해양문화를 널리 알리고 선사시대의 문화상을 연구하여 유용한 관광자원화 삼을 수 있을 것으로 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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