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는 세미나 참가자들
지창영
민중신학 연구자이기도 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는 '지금 여기에서 '사과'하고자 하는 우리 개신교 신자들에게 필요한 물음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기조 발제를 통하여 "최근 역사전쟁의 화두는 '이승만'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의 호감도는 다른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훨씬 낮은데도 불구하고 호출되는 이유를 살폈다.
그는 "이승만을 호출해낸 이들의 욕망" 중 하나로 "'공격적 반공주의'에 대한 갈망"을 꼽을 수 있다면서 극우주의자들에게 "이승만처럼 '적'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성을 분출시켰던 지도자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극우주의의 약진은 이런 이승만 추앙담론이 맹위를 떨칠 기회가 되고 있"다면서 기독교인이 "어떤 방식의 담론을 만들어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항쟁 연구자인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1946년 10월 항쟁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발제하면서 해방 후 미군정이 남한에 미국식 국가기구를 건설하면서 좌익을 탄압하는 배경 속에서 10월 항쟁이 일어났는데, 당시 서울 영락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단원 100명이 대구에 들어와 있었고 이들은 항쟁 기간 총을 들고 다니면서 민간인 학살과 가옥 방화, 주민 재산 탈취, 성폭행 등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어서 지방 보수세력은 초기에는 조직이 별로 없었으나 친일파와 기독교계가 중심이 되어 지역 보수세력을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조직하여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고 이들이 10월 항쟁을 진압하면서 지역에서 중요한 권력을 누리면서 지역사회가 반공 우경화되었다고 언급했다.
제주 한울교회 윤태현 담임목사는 '4.3항쟁과 기독교 - 장두(狀頭)와 메시아'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하여 "4.3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많은 기독교인들은 제주를 토벌한 경험으로 한국 전쟁 동안 승승장구하여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이미 먼저 독립군을 토벌한 경험을 활용하였고 이러한 학살의 경험치는 한국전쟁 이후에는 베트남전쟁과 80년 5월 광주에서도 활용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제주와 여순을 거치며 형성되기 시작한 '반공 기독교'는 여전히 4.3의 과오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대한민국 극우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으며, '뉴 라이트' 논쟁 등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이 이제라도 다함이 없는 사과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태육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여순사건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발제하면서 "여순사건 당시 기독교인들이 민간인학살에 가담한 사례를" 밝혔다. "여순사건 당시 반군 토벌에 나선 야전 부대장에 기독교인이 다수 포진했으며 이들은 비기독교인 지휘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반군 협력 민간인들을 체포, 분류, 처형했다"면서 국가폭력에 적극 가담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진영에 속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적으로 규정할 뿐 아니라, 마귀와 사탄으로 규정"하기까지 했음을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은 소련 군정과 북한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탄압을 받고 월남한 기독교인들이 설립한 영락교회, 경동교회, 남산교회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교회는 남한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사탄, 마귀로 규정, 이들을 적극적으로 배제, 제거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