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가 서 있다.
HSC
[6개월과 의료 시스템] 응급실 때문에 주목 받지 못한 문제들
박서화 : 만사 제쳐놓고 급한 문제부터 말해보자. 언론에 등장하는 '응급실 붕괴'를 비롯해, 당장 환자들이 느끼는 불편이 심각하다. 우리는 '환자의 필요' 그리고 '시민의 필요'에 대해 계속 주장해 왔는데, 지금 어느 필요부터 손을 대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가.
김진환 : 우선 한국 전체 인구를 두고 보자.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분명히 있겠지만 응급의료를 이용하는 사람은 한달에 50만명에서 70만명 정도이니(관련자료:
김윤,"진료역량 최상 권역응급센터의 중증환자 전원이송 증가로 지역응급센터 부담 확대…중증환자 사망 증가"_240910), 데이터를 두고 보면 사실 소수의 문제다. 정치화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지 않으나, 지금 정치화되는 방식이 누구의 문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급한 문제? 한국 사회는 누구의 필요를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문제가 가장 급하다. 의료 이용의 문제에 있어서 응급실과 관련한 부분이 과잉 대표된다면, 지금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어느 필요부터 손을 댈 것인가? 이것은 전문가가 정의할 문제는 아니다. 정치화되지 않은 필요가 지금도 곳곳에 있다. 이 필요의 우선순위 자체를 시민이 정의해야 한다.
문주현 : 사실 HSC의 이번 기획 역시 '폭발의 지점'에만 주목한 감이 있다. '전공의 이탈'과 이로 인한 문제는 중요하지만, 그전에도 문제는 있었다. 이를테면 환자가 길에서 사망하거나, 구급차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사건 배후에는 기존부터 지역 일차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중소병원의 기능도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 있다.
주민들은 각자 알아서 큰 병원과 '명의'를 찾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주민들의 행동을 '수도권 쏠림'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지역에선 분만실을 운영하던 산부인과가 폐업했고, 의사들은 화상을 입거나 중증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를 전문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 보내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됐다. 그렇게 계속 문제가 쌓여왔다. 지금 대학병원에 몰입한 논의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병원에 전공의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김진환 : 당장 지역에서 차출돼 간 공중보건의사 문제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공중보건의사가 '빠져나갔다'는 사실 자체는 주목을 받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나? 이번 사태에서도 지역 문제는 서울과의 연계가 있는 부분만 딱 잘라 주목 받았다. 관심이 끊긴 상황에서 주민들은 계속 아프고 죽었다. 이 말은 누가 하나? 지금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잘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한빈 :의료 문제가 단순히 지도 펼쳐놓고 여기는 어떻네 하고 정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노숙인 진료에 참여하면서 보면, 거동이 불편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병원에 오기 어려운, 높은 지대에 산다. 그러면 걷기도 힘든데 호흡기 문제까지 있어서 숨차고 힘든 상황에서 병원 가기도 어렵다. 교통 역시 불편하다. '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편에서 했던 말이 이런 이야기다. 이런 사정이 과연 주목받았나? 의료 담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필요'로 인정되었냐는 질문이다.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6개월과 노동] "의사 권력은 사태의 중심이다"
박서화 :그렇다면 내부의 생산 체계를 보자. 문주현 선생님이 중요한 이야기를 짚었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 역시 기존에 있던 문제들이고, 결국은 기존부터 시스템 차원의 연계와 협력이 부족했다고 반성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을 의료 생산 차원에서 평가해 보면 어떤가?
문주현 : 우리가 노동 이야기도 하지 않았나. 간단히 생각해 보면, 이번 전공의 이탈 사태 역시 모든 시스템이 뒷받침돼 있었더라면 노동자의 파업권 측면에서 넘어갈 문제여야 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이나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을 생각해 보자. 파업을 앞두고도 대부분은 일종의 협의를 한다. 시민들이 덜 불편하도록 출퇴근 시간을 피해 시간대를 조율하거나 최소 근무 인원을 확보하고, 사전 공지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의료체계에 이런 과정이 있었나? 앞서 시민의 필요에 대해 언급했는데, 당장 정치화되는 필요에만 집중하는 담론은 이 차원에서도 나쁘다.
문다슬 : 하지만 그런 조율과 협력이 보건의료계 안에서 가능한가? 글에서도 말했지만, 의료 노동 내부에는 촘촘한, 그리고 강력한 위계가 존재한다. 연계와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하는 일을 노동으로 바라보고, 동료 노동자와의 협력을 도모하는 일이 전제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의료는 둘째치고 의사의 일을 '노동'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어색하다. 그렇게 접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연계와 협력을 두고 보면 결국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나눠서 수행할 것인지가 핵심 아닌가? 노동에 대해 연구해 온 입장에서 보면 의료에서 노동을 말하는게 마치 진공 상태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본시장만 있고 노동시장은 없는 영역 같다는 의미다. 혹시 부정적인 내용의 댓글에 대해 하나 언급해도 되나 (일동 웃음).
박서화 : 어떤 댓글인가.
문다슬 : 사직서를 내고 하루 만에 떠나는 게 의사만의 특권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물류센터나 공장에서도 그런 일이 많다고 하면서…그런데 비교의 축 자체가 틀렸다. 물류 노동과 공장 노동은 불안정한 노동의 대표 예시 아닌가. 이 노동자들이 하루 만에 떠나는 데는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있다. 일자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한 번에 빠져나가는 사례와는 다르다. 물류센터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몇 명의 '일용' 노동자들이 그만둔다고 해서 당장 그 현장과 시민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도 않는다. 노동시장에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뉴스에 대서특필 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사직서를 낼 기회 자체가 없다. 애초에 고용관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당황스러운 댓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