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계산대 모습(본문 마트와 무관)
김아영
하루는 손님 두 분이 함께 와서 레일에 상품을 올려놓았다. 꽤 많은 양이었다. 하나하나 수량과 품목을 확인해가며 바코드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손님 중 한 분이 그 사이 밖에 나가 가지 한 봉지를 새로 가져오셨다. 다른 손님은 내가 포장대로 밀어놓은 상품을 빈 상자에 담고 계셨다. 가지를 가져온 손님이 동행에게 물었다.
"이것도 담아도 돼?"
"이거 찍으셨죠?"
가판대 있는 채소류는 상품이 아니라 포스기에 따로 바코드를 붙여놓았는데 이런 방식을 잘 알고 계시던 손님은 가지를 가져온 걸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넘겨짚고 건성으로 물었다. 나는 나대로 레일에 있던 상품을 아직 덜 찍은 상태라 포스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거기 있는 건 다 찍은 거라 담으셔도 돼요."
드디어 바코드를 다 찍고 포인트 번호를 물어보는데 가지를 가져온 손님이 화면을 훑어보며 물었다.
"가지도 찍으신 거 맞죠?"
'웬 가지?' 하는 마음에 품목을 확인해보는데 없었다. 그런데 손님이 포장해 놓은 상자 위에는 분명 가지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아, 죄송합니다. 안 찍혀 있네요" 하고 가지를 추가했다. 그러자 손님이 하는 말.
"네, 죄송하세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웃으라고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니고 도도하고 업신여기는 말투였다. '죄송하다'라는 말은 형용사인데, 이는 '추우세요', '슬프세요'가 비문이듯 명령형으로 쓸 수 없는 품사이다.
이런 국어학적인 지식을 차치하고서라도 남에게 죄송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가. 더군다나 애초에 계산대 질서를 지키지 않고 곧바로 포장대로 상품을 가져온 손님의 행동에도 오해의 책임이 있었기에 내가 죄송하다고 한 말에는 진심이 절반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사과도 기대하고 한 말인데 예상 밖의 말을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예의상이라도, 설령 속으로는 100% 계산원 과실이라 생각했더라도, "괜찮아요"라는 무난한 말로 받아줄 순 없었을까. 말 한 마디에 그리 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겨우 말 한 마디라지만 무려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입에 붙은 말이 있으니 바로 "감사합니다"이다. 행복해지려면 감사 일기를 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일기 쓰는 게 귀찮다면 계산원으로 일하는 걸 추천한다.
내가 일하면서 한 말만 다 세어도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할 수 없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한 말이 아니라 업무 중 하나로 반사적으로 내뱉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입에 붙었는지 상황에 맞지도 않는데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놓고 손님도 나도 어색했던 적이 있다.
시쳇말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하는데 감사하다는 말도 똑같다. 솔직히 손님이라고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직원이 으레 하는 말이라는 걸.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계산하는 시간이 아무리 짧다 해도 감사하다는 말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순간 분위기는 아예 달라진다. 계산원으로서 생각해봐도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저 분은 돈을 내고 상품을 사가는 손님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어 일하는 마음가짐에 영향을 준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감사합니다"와 또 다르다. "감사합니다"는 계산이 끝나고 모든 손님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일은 애초에 많지 않다. 사실 죄송하다고 말하는 상황이 아예 없는 게 가장 낫다.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는 의식적으로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를 쓰는 편인데, 죄송하다는 말은 그런 계산 없이도 미안함과 난처한 감정이 실린다.
"괜찮다"는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