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 532 "항일 독립운동 기념비", 김옥돈 지사
정만진, 국가보훈부
김옥돈(金玉頓) 지사는 1975년 9월 30일 타계했다. 1889년 2월 2일 경북 의성 안평에서 태어났으니 향년 86세였다. 하지만 1919년 만세운동으로 1년 6개월의 고문과 옥고를 치렀으니 평온한 천수를 누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서울과 평양에서 김원휘가, 대구에서 박상동이 만세운동 참여 후 각각 일본 군경의 체포를 피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쌍계교회 조사(목사를 돕는 직책) 김원휘가 쌍계교회 박영화 목사에게 만세 시위 소식을 전달한 것은 당연했다. 서문시장 시위에 참가했던 계성학교 학생 박상동도 박 목사에게 대구만세운동의 경과를 이야기했다. 박상동은 박 목사의 아들이었다.
박영화 목사는 안사면 대사동교회에 만세시위 소식을 다시 전달했다. 이 교회 장로였던 김옥돈 지사는 3월 15일 예배 후 이종출·이양준·이북술 등과 의견을 나누다가 '오늘 거사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그후 이만준·배세태·이맹준·이수원·정갑이·이흔이 등 동민들도 거사 계획에 찬동했다.
쌍계동에서 대사동으로 교회 통해 번진 만세운동
오후 7시무렵 100여 명의 시위군중은 대사동 뒷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얕은 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은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시위 소식을 빨리 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다음날(3월 16일)에는 오후 8시무렵 이종출·이만준 등 1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기도동, 창길동까지 행진을 벌였다. 다시 3월 17일에는 이웃 부락민 150여 명까지 규합되어 회길동, 화령동까지 "대한독립만세!" 행진을 하고, 안평 경찰관 주재소 앞에서도 시위하였다.
18일 시위에는 약 300명의 군중이 참가하였다. 3월 19일 낮에도 김옥돈은 이북술과 함께 이수원·이흔이 등 400여 명 시위군중을 이끌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이웃 면인 봉양면의 사부동까지 행진하고, 안평 경찰관 주재소 앞에서 재차 시위했다.
3월 15일, 16일, 17일, 18일, 19일 계속 만세시위
국가보훈부 현충시설정보서비스는 1996년 4월 18일 건립된 <항일 독립운동 기념비> '시설 내용'에 따르면 "3월 15일부터 3월 19일까지 일어난 안평면 대사리(우리골) 만세시위는 대사리 기독교 교회 교인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지도되었으며 농민들이 전면에 나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고 한다.
김옥돈 지사는 연속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그해 5월 1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