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통일 동아리 아이들이 책에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하는 모습.
서부원
아이들이 납득할까 싶지만, 익숙하고 편한 강의식 수업을 포기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교사 홀로 떠들고 아이들 모두 가만히 앉아 듣기만 하는 일방향 수업은 수명을 다한 지 이미 오래다. 교사는 칠판이나 노트북과 대화하고, 아이들은 딴청 피우거나 엎드려 잠자기 일쑤다.
잠든 아이들을 깨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무기력한 아이들의 모습에 익숙해지노라면 그러려니 하고 진도를 마친 것에 만족하며 교실을 나온다. 과목에 따라서는 불과 몇 명만 눈을 뜨고 있는 수업도 있다. 이쯤 되면 학교 교사인지, 가정집 과외 교사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수업 중 몸을 움직이거나 서로 대화하게 하면, 적어도 잠자는 건 막을 수 있다. 아무리 피곤함에 찌든 아이라도 친구들의 북적이는 소리에 잠을 자려야 잘 수가 없다. 모둠활동을 하는데 혼자 나 몰라라 하는 건 눈치가 보인다며,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한다는 아이도 많다.
수업의 목표를 '잠 쫓기'로 설정하고 나니, 도저히 강의식 수업으론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누구는 '1타 강사'의 인터넷 강의처럼 재미있으면 부러 잠자라고 해도 안 잘 거라지만,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장담하건대, '1타 강사'의 강의도 학교 교실에서는 '자장가'가 된다.
모둠별 퀴즈 대항전 형태로 진행한 모둠활동으로 목표 달성에는 성공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단순히 교과서의 서술 내용을 알고 있는지 묻는 식이어서 역사교육의 본령에 부합한다고 할 순 없다. 이를 통해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역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테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을뿐더러 당장 수업 시간에 눈은 뜨고 있어야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모두 잠든 교실에서 교육과정과 학습 목표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자괴감의 발로였다. 그렇다고 눈 뜬 몇몇 아이들만 끌고 가는 건 각박한 현실을 핑계 삼은 반교육적 행태다.
아이들은 게임을 즐기듯 모둠별 퀴즈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졸거나 딴청 피우는 경우가 아예 사라졌다. 조는 아이들로 적막했던 교실은 이내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로 흡사 경매 시장처럼 왁자지껄해졌다. 이젠 옆 교실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활기찬 수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퀴즈를 풀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동학습이 이루어지고, 더불어 우애도 돈독해질 것이라 기대했다. 교과서의 쪽수를 나눠 예상 문제를 발췌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등 대응 전략을 짜는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모둠활동만이 줄 수 있는 묘미다.
깜지때문에
그렇듯 이구동성 가장 재미있는 수업이라며 한국사 시간이 기다려진다고까지 말하던 모둠별 퀴즈가 된서리를 맞은 건, 순전히 깜지라는 벌칙 때문이었다. 일곱 모둠 중에 당일 수업의 합산 점수가 가장 낮은 두 모둠이 깜지를 쓰도록 했다. 대략 40분 정도가 소요되는 분량이다.
모둠 벌칙은 퀴즈의 박진감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자, 예습을 유도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이른바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을 줄이기 위해 '개인 퀴즈'도 끼워 넣는 등 운영에 묘를 살렸다. 모둠이 연속해서 벌칙을 받는 경우, 깜지를 두 배로 늘리는 규칙을 정한 것도 그래서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깜지를 쓰게 해서 공부를 시킨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번엔 학부모까지 나섰다. 공부 못하는 아이로 인해 억울하게 손해를 봤다고 여기는 아이들을 설득하는 일도 버거운데, 몇몇 학부모들까지 깜지 벌칙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펜글씨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어서 더더욱 깜지 벌칙이 아이들에게 주는 고통이 크다는 거다.
사실 벌칙으로 굳이 깜지를 쓰게 한 건 그래서다. 요즘 아이들의 글씨를 당최 알아볼 수 없어서, 수업 시간에 부러 짬을 내어 펜글씨 쓰기라도 시킬 요량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서술형 답안을 채점하노라면 글씨인지 그림인지 모를 '낙서'를 해석하느라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아무리 노트북과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려 메일을 보내는 게 일상인 세상이라도 펜글씨가 사라질 리는 없다. 글씨체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시대는 이미 가고 없다지만, 펜글씨에는 화면에 띄워진 문자들에선 느낄 수 없는 따스한 정감이 있다. 예로부터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라는 금언이 전해오는 이유다.
교육의 '수월성'과 '효율성'만 따지려 드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설득할 묘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대개 상위권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어서 더욱 힘들다. 민원이 두려워 입 뻥긋 못 하지만, 딴에는 수업의 개선을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는데 격려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토를 다는 모습이 못내 서운하다.
아무리 수월성 교육과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해도, 그걸 진정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교육은 결과로만 평가될 수 없으며,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도록 이끄는 지난한 과정이다.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과 뛰어난 학업 성취가 만나는 곳은 사회가 아닌 정글이다. 이래저래 교육 참 힘들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0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공부 잘하는 애들의 반란... 지금 교실이 이렇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