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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기운 촉촉할수록 명강의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 20] 스스로 '삼복지인(三福之人)'으로 자처했다

등록 2024.10.03 16:41수정 2024.10.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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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 (주)CPN문화재방송국


고래로 문인 치고 술 좋아하지 않는 사람 드물지만 가람 역시 술을 무척 즐겨 마셨다. 스스로 '삼복지인(三福之人)'으로 자처했다. 문복(文福)·제자복(弟子福)·술복(酒福)이다.

진정한 애주가는 많이 마시기보다 자주 마시는 편이다.
그는 음주와 관련한 주제로 시조를 짓거나 수필을 쓰진 않았지만, 싯구에는 가끔 보인다. 시조 <외로운 이 마음>이다.


외로운 이 마음

입동이 멀잖은데 아직도 날씨는 덥다
어제 두어 잔 찬술을 마셨더니
이 밤이 들기도 전에 배가 자주 끓는다

잠은 든숭만숭 꿈으로 밤을 보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이 일어나기도 싫다가
첫새벽 참새 소리에 오도(悟道)한 듯 하고나

한 포기 꽃도 없는 사막과 같은 이 생활
부귀나 영화는 아예 바랄 것 없거니와
한 나이 더해 갈수록 더 외로운 이 마음. (주석 1)

제자가 지켜 본 술 좋아하는 스승의 모습이다.


스승의 애주하시는 모습은 '두주(斗酒)를 사양치 않으며 청탁을 가리지 않는 대인의 풍모' 그대로였다. 길가의 검은 포장집이고 장터 안의 상인들이 들썩이는 술집이고간에 자리는 탐하지 않으셨고, 술을 드시면 드실수록 연발하시는 웃음과 종횡무진 풍발하시는 이야기에는 문자 그대로의 부진장강곤곤래(不盡長江滾滾來)의 큰 가람의 풍도에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슴도 활연하여지곤 하였다.

이렇듯 술을 좋아하시면서도 스승은 옳다고 생각한 일에는 열과 성을 다하여 굽힘이 없으셨고, 어느 이야기 끝이었던가. 조선어학회사건 같은 정신의 일이라면 '나는 영어되어 썩더라도 기쁘게 참가하고 싶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주석 2)


조선시대의 선비나 양반 그리고 해방 후 문인사회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이른바 '음주문화'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술이 사교의 매체 역할을 한 것이다. 또 다른 제자가 지켜 본 애주가 가람의 모습이다.

한번은 내가 먼저 가 있는 자리에 석정 선생이 들어왔다. 그는 정중히 큰절을 하고 나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은 다음 문후를 여쭙는 깍듯한 예를 다하는 것을 보았다. 석정 선생의 이런 언동은 나 같은 버릇 없는 제자들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이런 때면 으레 술상이 나온다. 가람 곁에는 항상 술이 있었다. 강의시간에도 고금의 해학을 거침없이 쏟아내어 교실에 활기를 넘치게 하는 데도 술의 힘이 컸다.
그 때만 해도 생소한 이름인 모과주니 매실주니 두견주니 하는 것들이 나왔다.

술잔이며 주전자며 안주 그릇까지 조롱박으로 이루어진 한 세트를 자랑삼아 내서 술을 따르기도 했고, 흔히 정종이라 하는 청주에 황국송이를 띄워 마시는 풍류를 시범하기도 했다.

평생 '좀먹고 썩은 책'(가람 자신의 술회)이나 사 모으는 골샌님의 술시중에 생애를 바치다시피한 부인이 있고, 스승의 애주를 익히 아는 제자·친구가 널려 있으니 술이 아쉬울 리 없었다. 이것을 가람은 '술복'이라 하며 흐뭇해했다.

가람의 술은 '소박한 시골 선비' 그대로 청탁을 가리지 않고 술잔을 사양하지 않았으나, 고급요정보다는 시장 안의 곰보집이나 길가의 '무슨 댁' 하는 포장집 같은 데를 더 좋아했다.

명사들과의 격식 바른 자리는 되도록 멀리하고 제자나 친구와 어울리기를 즐겨했다. (주석 3)

망국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며 힘겹게, 그런 시국에도 바르게 살아온 시인·학자에게 어쩌면 숱은 자신을 지키는 방편이었을지 모른다.

술을 즐겨 마시면서도 주정을 하거나 주태를 부리지 않았고 강의는 명강의로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다. 역시 제자의 증언이다.

가람의 강의엔 언제나 술기(酒氣)가 배어 있었다. 그만치 아침 진짓상에도 술, 점심 식탁에도 술, 그리고 으레 석양배로부터 초저녁은 술이셨다.

술기가 촉촉할수록 강의는 강물이 도도한 흐름과 같은 명강의였다. 칠판의 글씨는 술기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정서(正書)요, 해서(楷書)였다. 흘림체를 쓰지 않았다.

주량도 크신 편이었다. 청탁에도 가림이 없으셨다. 댁에서는 두견주와 국화주를 즐겨 드셨지만, 밖에서는 막걸리·약주·청주·소주·맥주 등 자리나 상에 따라서 술이면 아무거나 드셨다. 술을 따로 챙기거나 바꾸어 마시자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었다.
언젠가 아침 진지를 드시는 자리에서였다. 밥그릇 뚜껑은 여시려 하지 않고, 술잔만 기울이시기에,

"이제 그만 진지를 드셔야지요"

하고 말씀을 드리니 가람은 빈 잔에 술을 더 따르라며,

"이 사람, 영양가야 밥보다 술이 낫지. 이거야 곡즙(穀汁) 아닌가"

라는 말씀이었다. (주석 4)

주석
1> <가람시선>, 73쪽.
2> 최승범, 앞의 책, 71쪽.
3> 장순하, 앞의 책, 28쪽.
4> 최승범, 앞의 책, 8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병기평전 #이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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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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