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과 연못모정 앞에 조그만한 연못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오명관
1922년 3월 1일의 일기다.
밝다·탑골공원을 지나다가 시조를 지었노라.
차디찬 겨울날 어느덧 다 지나고
따뜻한 봄볕이 동산에 비치오니
새들도 때를 만난 듯 지저귀며 반기더라
동산에 꽃이 피어 벌나비 날아든다
덤불 속 매화야 뉘라서 알야마는
드러난 도화이화(挑花李花)만 서로 보고 세우더라.
구렁에 얼음 녹고 메위에 아지랑이 끼는데
아낙은 나물 캐고 사내는 밭을 간다
진실로 제 벌이 제 삶이 죄질 것 없어라. (주석 3)
1923년 3월 1일의 일기다.
맑다, 좀 춥기도 하다. 이날은 정월 열나흘인가. 아니 3월 1일은 곧 정월 열나흘을 올해 말이다. 3월 1일, 3월 1일, 나는 무슨 일을 하였었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장차 무슨 일을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제목만 두고 그렁저렁 한 평생 지날 뿐인가. 나는 무엇보다도 내 문제가 급하고 크다. 나는 내 마음 하나를 추스릴 줄 모른다. 하물며 다른 이에게 미치랴. 홍태식씨가 홍명희씨의 명함을 가지고 온다. 매우 몸이 튼튼하게 보인다. 호영강습회에서 장정 하나를 얻어 가겠다. 지시해보자. (주석 4)
1929년 12월 9일의 일기다.
학교에서 3, 4, 5학년 일동이 광주사건으로 말미암아 맹휴를 한 것 순사 포위, 형사 간섭에 대개 진정되었다. 들으면 경신에서는 300여 명이 보성고보로 가서 합동하여 다시 남대문 상업학교로 와 합동하여 창경원 앞으로 나오니 저지되고 다시 창경원 담 뒤로 돌아 최운정으로 빠져 중앙과 합동하여 쏟아져 효자동으로 나오다 검거되어 경찰교습생, 소방대까지 출동하여 사뭇 자동차로 실어갔다 한다. (주석 5)
1935년 5월 16일의 일기다.
흐리다 맑다. 매화 한 주에는 싹이 트지 않는다. 사다가 심은 지가 벌써 한 달 20일.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 끝만 좀 마르고 싱싱하다. 잡아매었던 것을 다 풀어주었다. (주석 6)
해방 후인 1945년 9월 22일 일기다.
오전 10시 연극장에서 〈과거의 우리문화〉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위아래층에 가득히 모인 청중이 퍽 긴장하여 듣는다. 한 시간 반을 하였다. 이렇게 정숙히 듣기는 전주에서 처음 보는 바라 한다.……전주 강습은 다 마쳤다. 6일 동안에 한글 쓰는 법을 거의 다 알렸다. 한 사람도 조는 이 없이 끝끝내 들었다. 매우 기쁜 일이다.
그는 평생 일기를 쓰고 곁에 난과 매화를 두었다. 말년에는 난초의 재배법을 터득했다.
1. 난의 종류는 많으나 관음소심란과 건란이 가장 좋다.
2. 분은 자도(紫陶)로, 높이는 높고, 넓이는 좁은 놈이 좋다.
3. 난을 심을 때, 그 썩은 뿌리는 다 끊어내고 그 뿌리와 뿌리 사이에 모래를 끼게 하여 분 밑에는 적분파편(赤盆破片:아무쪼록 등골 등골하게 만들어)을 깔고(이는 수기(水氣)를 흡수), 그 위에는 좀 가는 모래를 깔고, 그리고 난근(蘭根)을 그 위에 놓고, 모래를 넣어 그 틈을 채우고 물을 주어 가라앉힐 일이다.
4. 물은 4~5일에 한 번씩 줄 일. 자주 너무 주면 뿌리가 썩는다.
5. 항상 음지에 두고 혹은 발로 가려 양지에 두기도 한다. 일광은 하루에 한 시간 가량 쪼일 일이다.
6. 거름은 차(茶) 찌꺼기 같은 것을 쓴다.
7. 처음 순이 나올 때 물을 조심하여 줄 일. 순이나 잎 속에 물이 잠겨 부패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주석 7)
주석
1> 최승범, 앞의 책, 94쪽.
2> <일기초(抄)>, <가람문선>, 101쪽.
3> 앞의 책, 106쪽.
4> 앞의 책, 111쪽.
5> 앞의 책,
6> 앞의 책, 131쪽.
7> 최승범, 앞의 책, 5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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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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