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익비 비판을 비판한다

등록 2024.10.08 11:06수정 2024.10.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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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공단 민원실을 찾은 시민. 2023.3.31
국민연금공단 민원실을 찾은 시민. 2023.3.31연합뉴스

국민연금에 대해서 앞세대가 뒷세대보다 낸 것에 비해 지나치게 후한 연금을 받는다며 세대 간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은 주로 경제학자들에게서 나온다. 이런 비판의 토대는 '세대 간 회계'라는 분석 방법에 근거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세대 간 회계는 개인이 생애 동안에 정부에 낸 세금과 사회보험료와 정부로부터 받은 급여액을 세대별로 추계하는 연구다. 수익비는 9%의 보험료 총액에 운용 수익을 붙여서 받게 되는 연금 총액의 비율을 의미하고, 내부 수익률은 9%의 보험료가 몇 %의 이율로 연금으로 돌아올지를 계산한 이율이고, 수익 차는 받게 될 연금 총액에서 9%의 보험료 총액을 뺀 금액을 의미한다.

세대 간 회계의 관점에서 추계한 이러한 결과들은 모두 앞세대보다 뒷세대가 손해를 본다는 결론에 일치하고 있고 이것이 세대 간 불공평을 확대했을 뿐 아니라 거액의 미적립 채무를 뒷세대에 떠넘겼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수익비 분석은 국민연금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주장일까? 수익비 분석이 국민연금이 적립방식으로 시작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사실일까? 국민연금을 시작할 때, 저축이나 민간 금융상품처럼 운영할 목적이 있었던가?

공적 연금의 세 가지 재정방식

 연금의 재정 방식
연금의 재정 방식정재철
먼저, 간단히 공적 연금의 재정방식을 정리하고 논의를 이어가자. <그림>의 ① 부과방식은 당해 연도에 연금 수급자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 총액을 당해 연도의 근로 세대의 보험료로 충당하는 재정방식을 말한다. 보통 적립금을 갖지 않거나 작은 규모의 비상준비금 정도를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②의 단계보험료 방식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데 국민연금이나 직역연금에 적용된 재정방식이다. 공무원연금을 예로 설명하면 제도 초기에 2.3%의 낮은 보험료율을 적용하기 시작해서 점차 보험료율을 높여 현재의 18%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재정방식이다. 연금 수급자가 늘어 제도가 성숙해 가는 동안 저출산 고령화의 진행 상황에 맞춰 보험료(율)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게 되면 부과방식의 요소를 갖게 되어 결국 부과방식으로 가는 전 단계의 재정방식이다. 부과방식과 다른 점은 일정 규모의 적립금을 보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③의 평준보험료 방식은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 민간 금융상품에 적용하는 재정방식이다. 평준보험료는 약속한 연금에 필요한 보험료를 계산하는 경우 시간의 경과와 무관하게 일정한 보험료율로 유지되는 재정방식으로 말한다. 보통 연금 재정의 안정성과 세대 간 부담의 공평성 관점에서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공적 연금제도를 시작하는 초기 단계부터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높은 수준의 평준보험료를 처음부터 국민에게 요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공적 연금의 3가지 재정방식 중에 단계보험료 방식은 '수정 적립방식' 혹은 '부분 적립방식'이란 용어로도 사용해 왔다. 수정 적립방식은 적립방식 운용에 필요한 평준보험료를 제도 초기부터 요구할 수 없으니,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수정'하고 이후 재정계산 제도를 반복하면서 평준보험료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재정방식으로 단계보험료 방식과 같은 재정방식이다. 다만 단계보험료 방식이 보험료를 지속해서 인상해 간다는 재정계획을 이미지화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 이 글에서는 수정 적립방식보다 단계보험료 방식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럼, 국민연금은 어떤 재정방식으로 시작했을까?

일본 후생연금 보험을 모델로 삼은 한국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평준보험료의 적립방식이 아니라 단계보험료의 수정 적립방식으로 시작했다. 1986년에 제정된 국민연금법은 일본 후생연금 보험을 모델로 설계했고 재정계산 제도 역시 일본 후생연금 보험을 모델로 도입한 제도다. 1970년대 전반의 국민복지연금법과 1980년대 중반의 국민연금법 입법에 관여했던 국내 전문가와 관료들이 일본 방식을 상대적으로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 후생연금 보험은 왜 단계보험료 방식을 채택했을까?

일본 후생연금 보험은 1942년에 창설되었는데 창설 당시 보험료율을 월 임금의 6.4%로 책정했다. 6.4%의 보험료율은 먼 미래에 걸쳐서 보험료율을 인상하지 않고 일정 수준을 유지할 때 필요한 '평준보험료율'을 기준으로 결정했다. 또한 국고 부담은 급여비의 10%로 정했다. 1944년에는 명칭이 후생연금 보험으로 개정되어 적용 사업소가 확대되었고 화이트칼라 노동자나 여성 노동자에게도 적용 확대가 강화되었다. 동시에 급여 수준도 개선되어 보험료율도 월급의 11%까지 인상되었다.

패전 후 후생연금 보험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연금 가치 하락(적립금 가치도 하락)과 보험급여 동결 등의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당시의 후생연금 보험에는 임금 재평가나 물가 슬라이드와 같은 연금의 실질 가치를 보전해 주는 법 규정이 없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연금의 실질 가치 하락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48년 개정에서는 이미 지급이 시작되었던 업무상의 장애연금 및 유족연금에 대해서 대폭적인 급여 개선을 감행했다.

한편 보험료 부담 측면에서는 전후 혼란기 상황을 고려하여 피보험자와 사업주의 부담 능력 등에 배려하는 차원에서 보험료율을 월급의 3%로 낮췄다. 그 당시에 계산되었던 평준보험료율은 남자 같은 경우에는 9.4%, 여자는 5.5%로 높은 수준이었다. 평준보험료율의 3분의 1 수준인 3%로 낮춘 보험료율은 당분간 잠정적인 조치였기 때문에 이것을 '잠정 보험료율'이라고 규정했다.

'잠정 보험료율'은 당분간 평준보험료의 1/3수준인 3%에 머물렀는데 그 이유는 평준보험료율로 회복하기에는 당시 경제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고 무엇보다 노사가 보험료 인상에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후생성은 단계적으로 평준보험료율까지 인상할 것을 법률에 규정하자고 제안했지만 노사 모두 완강히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후생성은 평준보험료율을 법률에 규정하는 것은 포기하는 대신 차선책으로 향후 5년 후까지의 보험료율을 법률에 규정하고 5년 후에는 재정을 다시 계산해서 그다음의 5년 동안의 보험료율을 결정하겠다는 '단계보험료 방식'을 법률에 규정했다. 남자 근로자에게 필요한 9.4%의 평준보험료율을 한꺼번에 올리지 않고 3%로 시작해서 5년마다 필요한 보험료율을 다시 계산하는 재정계산 제도를 통해 5년마다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인상할 수 있는 일종의 '규율'이 마련되게 되었다.

국민연금은 후생연금 보험법을 참고하여 법 부칙에 보험료율을 3%에서 시작해 5년 후에는 6%, 다시 5년 후에는 9%로 단계적으로 인상한다는 인상 계획표를 규정한 단계보험료 방식에서 출발했다. 1986년 보건사회위원회 제131회 제14차 회의록을 보면, 이해원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은 국민연금법 전면 개정안을 설명하면서 "국민연금 사업에 드는 비용에 충당하기 위한 갹출료는 단계적 보험료 방식을 채택하여 실시 초년도인 88년부터는 보수월액의 3%로 하여 노사가 분담하도록 하며 93년부터는 보수월액의 6%로 하되 4%는 노사 분담 2%는 근로기준법 제28조의 규정에 의한 퇴직금에서 전환 적립도록 하고 98년 이후부터는 9%로 하여 6%는 노사 분담 3%는 퇴직금에서 전환 적립토록 함으로써 제도 시행 초기에 노사의 신규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도가 시작되었던 1988년부터 평준보험료의 적립방식을 채용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단계보험료 방식을 채택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가입 기간이 짧은 가입자에게도 일정 수준의 연금 지급을 위해서 특례노령연금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괜찮은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하면서 세대 간의 낸 보험료 총액과 받는 연금 총액을 의미하는 부담급여비율의 격차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수익비 격차는 상당 기간 적립금을 대규모로 보유하면서 5년마다 경제사회의 변화와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응하는 일본 특유의 재정 운영을 국민연금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재정계산을 하지 않더라도 향후 10년간의 보험료율 인상 계획을 법률(부칙)에 담을 수 있었다.

국민연금은 1986년 국민연금법 제정 때부터 적립방식이 아니라 미래의 물가상승률과 임금 재평가 등을 적용하여 실질적인 연금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 조금씩 보험료율을 인상해 가는 단계보험료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의 소득 수준이나 가족구성, 국민인식 등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경제사회의 변화에 맞게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면서 국민연금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선진적인 재정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부과방식으로 시작했다면 달랐을까?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부과방식은 그해 필요한 연금 총액을 그해 근로 세대에게 보험료를 부과해서 조달하면 되기 때문에 아예 적립금을 갖지 않거나 아주 적은 적립금(비상준비금)만 갖겠다는 재정방식이다. 공적 연금 도입 초기부터 적립금을 갖지 않는 부과방식을 도입하면 연금을 받는 사람이 아주 극소수이기 때문에 아주 낮은 보험료만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급자가 늘어나고 임금 재평가나 물가상승률을 적용해서 연금의 실질 가치를 보장하기 시작하면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 수준도 올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단계보험료 방식과 같아지게 된다. 그래서 연금 선진국에서 제도 도입 초기의 보험료율과 비교했을 때 몇 배 이상 뒷세대가 더 부담하지만, 이것을 세대 간 불공평이라고 비판하는 선진국이 없었다.

민간 금융상품 분석할 때나 어울리는 수익비 분석은 틀렸다

국민연금은 제도 시행 초기부터 적립방식이 아닌 단계보험료 방식으로 채택하였고 국민의 부담 수준을 봐가면서 점차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계획으로 시작되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일본 신 후생연금의 도입 초기를 상당히 참고했다. 그래서 낸 돈에 운용이율을 붙여 돌려주는 적립방식의 민간 금융상품을 분석할 때나 어울리는 수익비 분석은 역사적 사실관계에서 보면 틀린 분석이다.

그래도 국민연금의 세대 간 수익비 격차를 문제 삼고 싶은 연구자들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장애연금의 수익비를 계산해서 장애연금을 받지 않고 있는 국민과 비교하여 지나치게 높은 수익비를 받고 있다며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까? 특례노령연금을 지급한 것은 정책 실패인가? 국민연금에 임금재평가나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연금 수준을 높이는 비용을 후세대가 부담하기로 약속한 것이 제도 설계의 실패일까? 예상보다 오래 살게 되어 수익비가 높아졌다고 해서 고령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 추가 보험료를 징수해야 할까?

왜 연금 선진국들이 낮은 보험료 부담으로 시작해서 점차 부담 수준을 높여 오는 동안 수익비로 공적 연금을 분석하여 세대 간 격차를 문제 삼지 않았는지 한 번쯤 곱씹어 보자.
#수익비 #단계보험료 #부과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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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강사, 사회정책 박사. 일본 사회정책 전공, 사회보험 전공, 전 공무원 연금개혁 국민 대타협 기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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