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원으로 일하다 보면 유독 긴장되는 손님이 있고 마음이 편한 손님이 있다. 계산이라는 단순한 행위 안에도 다양한 태도가 드러난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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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계산원으로서 무조건 빠르게 계산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쫓기듯 행동했다. 물건 바코드를 찍고 다 찍자마자 회원번호를 묻고, 수량이 많으면 담아갈 종량제 봉지가 필요한지 묻고, 카드, 현금, 상품권, 카카오페이, 계좌이체 등 손님이 고르신 결제 방식대로 계산을 마쳤다.
내가 봐도 내가 좀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도를 편안해 하시는 손님 비율이 꽤 높았기 때문에 굳이 바꿀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이 시기 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내가 말하는 속도나 손놀림이 빨라지면 손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계산을 빨리 끝낼수록 만족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꼼꼼하게 산 물건을 확인하고 차분히 장바구니에 담고 싶어하는 손님도 있다.
그런데 계산원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계산을 끝내고 다음 손님 물건을 찍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밀려나듯 계산대를 떠나야 한다. 계산은 돈을 다루는 행위이다. 부랴부랴 해치우면 누군가는 불안함이 생긴다. '내가 제대로 계산한 거 맞나?'
손님은 차근차근 상품별 가격을 확인하며 물건을 담고 있는데 재촉하듯 회원 번호를 묻고, 어서 지갑을 꺼내라는 듯 총 금액을 말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뒤늦게 낯뜨거워졌다. 손님을 해치워야 할 귀찮은 일거리 즈음으로 여긴다고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는 태도였다.
사실 이런 성찰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편의점 단골 손님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는데 그는 매주 군복 차림에 큰 가방을 메고 왔다. 점심 시간에 와서 빵과 우유, 또는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산 뒤 파라솔 밑에서 먹고 쓰레기까지 말끔하게 치우고 갔다.
내가 그 손님을 오래 기억하는 까닭은 단지 옷차림 때문이 아니다. 매장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그가 보여준 몸에 밴 예의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매장에 들어와서 바로 필요한 걸 찾으러 가지 굳이 계산원에게 인사하진 않는다. 나는 일단 문이 열리면 "어서 오세요"하고 맞이 인사를 건네지만 열에 아홉은 아무 반응도 없다.
늘 대접받는 기분 들게 하던 이 손님
물론 그렇다고 무응답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중엔 낯을 가리는 손님도 있을 테고, 마음이 급해서 내 목소리를 못 들은 사람도 있을 테고, 으레 하는 인사겠거니 기계적으로 느낀 사람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