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아픈 것을 모르겠는가2013년 보건복지부 앞에서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빈곤사회연대
지난 7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의료급여 본인부담 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의료급여는 근로 능력의 유무, 질병의 중증도 여부 등에 따라 보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1종과 그보다 낮은 2종으로 나뉜다. 복지부는 1종과 2종 모두에서 외래를 이용하는 의료급여 수급자의 본인부담금 산정 방식을 기존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한다는 내용의 개편안을 내놓았다. 지난 2007년, 소득 등이 적절한 수준이 아니어서 생활이 어려운 국민에게 의료비를 전적으로 보장해왔던 공공부조제도에 본인부담이 처음 도입된 이후, 의료급여 제도는 17년 만에 다시 한 번 퇴보할 위기에 처했다.
정률제가 불러올 위기
정액제는 총 진료비가 얼마나 청구되든 일정한 금액만을 내도록 한다. 30대인 의료급여 2종 수급자 ㄱ씨의 경우, 2023년 급성 상기도 감염으로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관련 진료를 받은 바 있는데, 당시 본인부담금을 포함한 ㄱ씨의 총 진료비는 111,700원이었다. 정액제 하에서 의료급여 수급자는 일정한 금액만을 부담하기 때문에 ㄱ씨는 총 진료비와 상관없이 1,000원만을 본인 부담금으로 지출하였다. 물론 ㄱ씨가 받은 진료가 모두 급여 항목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정률제 하에서 의료급여 수급자는 일정한 금액이 아닌 '일정한 비율'에 따라 총 진료비의 일부를 부담하게 된다. 앞과 동일한 상황에서, 개편안에 따라 ㄱ씨에게 적용될 비율은 4%이기 때문에, ㄱ씨는 본인부담금으로 4,468원을 지출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총 진료비가 늘어날수록 본인부담금이 늘어난다. 더 많이 아플수록 더 많은 치료가 필요한데, 더 많은 치료를 받을수록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니, 더 많이 아픈 사람일수록 지출이 커진다. 널리 알려져 있듯, 문제는 가난할수록 아프다는 것이다.
수급자 옥죄는 데에 변함없는 복지부
제도의 내용은 바뀌어도, 복지부가 제도에 칼을 대는 이유에는 변함이 없다. 2007년에는 "급증하는 의료급여 재정의 안정화와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적정 의료 이용 유도를 위해" 본인부담 체계를 신설한다고 밝혔고, 올해는 "부담 능력 변화에도 본인부담금이 장기간 동결됨에 따라, 수급자의 비용 의식이 약화되고 불필요한 이용을 자제할 유인이 부족"하다며 본인부담 체계를 개편한다고 밝혔다.
더 해석할 것도 없다. 의료급여 제도를 유지하려다 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그 원인이 의료급여 수급자의 방만한 의료 이용 습관에 있으니, 본인부담 수준을 올려 수급자 스스로 병원에 덜 가도록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의료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며 반성 아닌 반성을 했던 것이 2006년 10월의 일이니, 꼬박 18년 동안 복지부는 지조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부담 능력의 '마이너스' 변화
복지부의 설명처럼 "부담 능력 변화에도 본인부담금이 장기간 동결"되어 의료급여 수급자의 '높은 지불 능력'과 맞지 않는 수준으로 국가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고 하려면, 전제 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생계급여를 포함한 소위 '수급비'라고 하는 것이 현실 물가 수준에 맞게 증액되어 수급자가 가뜩이나 빡빡한 허리띠를 더 졸라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야 한다.
그러나 의료급여 개편안과 함께 발표된 2025년도 기준 중위소득의 인상률과 그에 따른 생계급여 등의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과 소득 증가율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결정되었다. 현실 물가에 뒤처진 수급비는 수급자로 하여금 지출을 더 아끼도록 만든다. 의료비 지출도 예외가 아니다. 또 진료나 처방도 병원에 직접 방문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교통비 등의 의료비 외 지출도 무시할 수 없다.
ㄱ씨는 일을 해야만 수급비를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수급자였기 때문에 일을 꾸준히 해야 했고, 일할수록 몸은 자주 아팠으며, 병원비를 내기 위해 생계급여를 당겨 쓰고, 생계급여를 메우기 위해 주거급여를 당겨써서 월세가 밀리는 일을 겪었다고도 했다. ㄱ씨의 말마따나 수급비가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률제까지 시행된다면 "가뜩이나 모자란 수급비가 더욱 더 부족하게 될 것"이다.
'불필요함' 운운하기 전에 필요한 것부터
ㄴ씨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이면서 50대인 지적 장애인이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ㄴ씨는 주변 사람에게 "의사가 말을 해도 뭔지를 모르겠으니 같이 가자"라고 말한다. 보통 진료실 안에서 듣게 되는 말 중에는 비(非) 의료인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의학 용어가 대부분이다. 장애 특성, 의료 지식의 수준, 문해력 등은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지만, ㄴ씨는 대부분의 경우 동행인의 조력을 바탕으로 의료인과 소통해 왔다.
이때 동행인의 유일한 임무는, ㄴ씨 본인의 의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료 선택이 가능하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통증을 느끼는 주체, 치료를 받아 통증의 완화를 경험하는 주체는 오직 환자 본인이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말하는 "적정 의료 이용 유도"나 "불필요한 이용을 자제할 유인"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환자의 주체적 의료 이용 시도와 충돌한다.
실제 '적절한 정도의 의료 이용 수준'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한들, 환자 본인에게는 그것을 오롯이 통제할 권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즉, 환자 스스로 병원에 방문하는 횟수를 조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의료인이 행하는 진료 행위와 그에 따라 산정되는 의료비에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서기는 쉽지 않다. 비(非) 의료인 대중의 의학 지식에의 접근성은 매우 낮은 편이고, ㄴ씨의 경우처럼 정확한 소통을 위한 환자 개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진료실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23년 허리 통증으로 정형외과 의원에서 짧은 기간 수차례 주사를 맞은 ㄴ씨에게 '왜 이렇게 주사를 자주 맞느냐'라고 물었을 때, ㄴ씨는 "의사가 맞으라고 해서 맞았다"라고 답하였다. 복지부가 계속해서 수급자의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운운할 작정이라면, 수급자의 의료 이용 실태뿐만 아니라, 적어도 지식과 권력의 차이가 실재하는 진료실에서 행해지는, 공급자의 진료 행위의 적절성 또한 유심히 살펴볼 작정이어야 한다.
구조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는 비용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