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산 능선에서 보이는 풍경 빛나는 태양과 풍경을 함께 담기 위해 조리개를 한껏 조였다.
안사을
들머리는 성연주차장이었다. 주차장에서 산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시남산장 방향으로 왼쪽으로 꺾은 후 본격적인 오르막에 오르면 오서정, 정상, 시루봉을 거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경로였다. 후반부에 이야기하겠지만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길과 실제 길이 달라 하산 직전에 애를 먹었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적당히 땀이 흘렀지만 금세 가을바람이 훔쳐가 버릴 정도로 쾌적한 공기가 걷는 내내 우리 주변을 감쌌다. 이날 등산을 처음 와보는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를 위한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산악회(그나그밥)에서 잔뼈가 굵은 아이들은 비가 오나 안개가 끼나 그 자체를 즐기곤 하는데, 처음 하는 산행이라면 탁 트인 풍경 정도는 있어주어야 등산의 묘미를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올라가는 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군데군데 쌓인 돌탑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은 당연히 아닐 테고, 오며 가며 간절한 소망을 쌓아 올린 사람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남학생 둘은 발걸음만 남기고 힘차게 올라가 버렸고, 여학생 둘은 돌탑 앞에 서서 그 마음에 동참하고 있었다.

▲ 이미 높은 탑 위에 추가로 쌓으려고 하니 자꾸 돌이 떨어졌다.
안사을
"안샤(간혹 아이들이 부르는 나의 호칭)! 자꾸 돌이 떨어져요."
"그 좁은 곳에 돌을 올리려니까 당연히 힘들지."
"그럼 어떡해요? 나도 돌탑 쌓고 싶은데...?"
"굳이 남이 쌓아놓은 높은 곳에 꼭 그렇게 올려야 탑이야? 너희가 새로 시작하면 되지. 그러면 떨어지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엥? 그게 뭐예요? 그래도 돼요?"
"당연히 되지. 안 될 건 뭐야?"
"우와. 새로운 방법이다. 그러면 되겠다 언니!"
두 학생과 한 선생의 대화가 다소 웃기면서도 심오하다. 아이들은 신나게 주변에서 돌을 주워다가 일층짜리 돌탑을 쌓았다. 그러고는 내심 불안했는지 질문을 더한다.
"쌤. 그런데 누가 계속 쌓아줘야 탑이 되잖아요. 사람들이 여기 위에 탑을 쌓아줄까요? 이게 탑처럼 보일까요?"
"그건 이제 너희의 몫이 아니야. 굳이 그걸 왜 걱정해. 너희가 새로운 탑을 시작했고, 그 앞에서 경건하게 소원을 빌었으면 된 거지. 그게 큰 탑이 되고 말고는 그 탑의 운명에 맡기는 거야."
"아... 좋아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동화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숲의 힘이다. 이 짧은 순간에 엄청난 성장과 변화가 있겠냐만은, 숲과 돌을 매개로 한 상징적인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무언가 긍정적인 작용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돌탑 쌓기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 탑을 머릿돌을 올리는 아이들
안사을
이쯤이었을 것이다. 학생 하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등산이 왜 좋냐고 했다. 이런 원론적인 질문은 참 어렵다.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음... 갑자기 큰 질문을 받아서 어렵긴 한데, 딱 떠오른 처음 것을 말하자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선생님은 그냥 산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이 좋아.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힘든 오르막을 견디고 정상에 섰을 때의 쾌감을 등산의 묘미라고 하거든. 물론 나도 그게 좋긴 한데,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이렇게 그냥 걸어가는 순간들이야."
아이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뜻밖의 대답이었나 보다. 마침 다른 학생이 이 녀석을 저만치 앞에서 불러, 그는 나의 대답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총총 사라졌다. 나는 돌 위에 주저앉은 다른 학생을 챙기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한 줄로 가장 느린 학생을 선두에 두고 모두가 함께 같은 속도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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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능선길이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능선에 다다르면 갈림길이 나타날 것이므로 함께 속도를 맞춰야 했다. 발목이 좋지 않아 속도가 느린 아이를 가장 앞에 배치했다. 그리고 같은 빠르기로 천천히 올라갈 것을 주문했다. 뒤에 선 아이들은 앞에 선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 자체가 응원이었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하늘에 맞닿은 나무의 수(樹)평선 너머로 더 이상 높은 곳이 보이지 않았다. 능선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마침 뒤를 돌아보니 처음으로 전망이 열렸다. 행렬의 가장 뒤에 서 있던 내가 아이들을 불러 세워 뒤를 보게 했다.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형. 저기예요! 한 아이는 풍경 대신 불러 세운 나를 바라봤고, 후배가 그에게 일러주어 먼 곳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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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산 능선에서 잽싸게 달려 올라가 아이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풍경과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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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이제 평지에 가깝다고, 좌우의 풍경을 마음껏 즐기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에 능선에 오른 아이들은 이제 한숨 돌렸다며 표정이 밝아졌다. 점심을 먹을 장소까지 20분만 더 가면 된다고 하니 밥 먹을 생각에 걸음이 빨라졌으나, 군데군데 펼쳐진 절경이 그 걸음을 늦추기도 했다.
오서산 능선에는 쉴 만한 곳이 크게 두 군데 있다. 정상석이 위치한 데크가 하나, 그곳보다 북쪽에 있는 오서정이라고 불리는 데크가 하나, 이렇게 둘이다. 정상보다 오서정 쪽의 데크가 더 넓어서 그곳을 쉼터로 삼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원점회귀 산행 경로에서 잠시 빠져나와야 하는 길이긴 하지만 두 군데 모두 가보고 싶어서 정상 쪽으로 가지 않고 오서정 전망대로 향했다. 그곳이 우리의 점심식사 장소였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제집 안방처럼 신발을 벗고 자연스럽게 음식을 꺼내어 사이좋게 먹기 시작했다.

▲오서정 가는 길 나의 카메라를 기다리는 녀석. 함께 등산 한 횟수가 열댓 번이 넘으니 손발이 착착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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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중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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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올라온 길을 그대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쭉 따라 돌아야 하니, 온 만큼의 두 배를 더 가야만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늘이 내려주신 맑은 날씨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치 덕에 아이들 모두 콧노래를 부르며 밝은 표정으로 가을빛 산등성이를 걸었다.

▲능선을 따라 즐겁게 걷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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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이 막 시작될 때쯤이었다. 아까 등산을 왜 좋아하냐며 질문을 건넸던 아이가 나에게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선생님. 잠시 대화를 신청해도 될까요?"
"그럼. 당연하지. 말해 보렴."
"사실 전 이번 등산을 오게 된 이유가 명확히 있었어요. 전 등산다운 등산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사람들이 왜 등산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온 거예요."
"아하. 그래서 아까 선생님에게 왜 등산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봤구나?"
"네. 맞아요. 그런데 선생님의 대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등산이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1학년인 이 아이는 산에 오르면서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들에게도 등산의 묘미에 대해 물어본 모양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그나그밥 산악회라는 이름으로 꽤나 자주 등산을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평소 산행을 그리 매력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사람으로서, 친한 선배들이 좋아하는 그것이 대체 무엇 때문인지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참 대견했던 것은, 그것을 머릿속으로만 궁금해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몸소 몸과 마음을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적극적인 질문을 던지며 소통하고자 하니 참으로 반가운 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저는 선생님에게 여쭈어봤을 때 당연히 다른 사람들처럼 꼭대기에 오르는 쾌감 같은 것을 말씀하실 줄 알았거든요? 특히 선생님은 등산을 많이 다니시니까 더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과정을 더 즐기신다는 말씀이 되게 와닿았어요."
"그랬구나. 정말로 나는 그래. 그래서 가끔은 정상을 굳이 안 가기도 해. 정상석 앞에 사람들이 많으면 사진을 찍기 위해 굳이 기다리지 않고 생략하기도 하고."
"그래서 저도 오늘 쭉 걸으면서 생각을 했거든요. 정상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몇 시간 동안 걸으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겠다고요."
"그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어떤 목표만을 바라보고 현재를 수단으로만 삼는 삶 말고, 지금 살아가는 순간을 그때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지. 그러다 보면 또 어느새 탁 트인 곳에 도달해 있기도 하고, 그 순간은 또 더 행복하기도 하고."
"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래서, 다음 등산도 함께 간다고?"
"네? 네! 좋아요. 다음엔 어디로 가나요?"
수년 동안 아이들을 이끌고 산에 오르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런 순간 때문이다. 특히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단 하루의 시간에도 성장하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보인다. 위 학생과 나눈 두 차례 대화의 시간차는 불과 세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그 아이의 등판이 더 커져 보였다면 고슴도치 아빠의 지나친 콩깍지일까.

▲ 잘 익어서 저절로 짝~ 벌어지는 밤처럼, 이 아이들은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껍질을 짝~ 찢고 드러날 것이다.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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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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