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다니던 직장을 나오고, 내가 모은 돈으로 그동안 꿈이었던 퀼트공방을 열어 열심히 했다.
픽사베이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생활 형편이 나아져서 무사히 졸업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아주 좋아해서 자칭 문학소녀였다. 고등학교 시절엔 국어 과목을 특히 잘했다. 그래서 국어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집안 형편만 비관했을 뿐, 취업 후 야간대학을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1982년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자, 부모님은 나를 무척 대견하게 생각하셨다. 월급으로 적금을 부어 만기가 되면 드렸고, 또 몇 년을 모아 적금이 만기 되면 돈이 들어갈 상황이 벌어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다르게 현실은 버거웠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라도 졸업해서 취업하게 됐으니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그 일이 경제적으로 완전한 독립의 자유를 주지는 못했지만 나를 세울 수는 있었다. 지금까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가 매일 아침을 당연한 듯 따뜻한 밥을 차려주셨다는 점이다. 그게 지금까지 건강함의 기초가 되었고, 나는 그걸 당연한 듯 얻어먹으며 직장을 다녔기에 건강과 성실을 챙길 수 있었다.
흔들리는 청춘
나는 1982년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조기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성실하게 일 잘하고, 반듯한 글씨체로 장부 정리도 잘하고 똑 부러지게 일한다며 칭찬받는 귀여운 막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비 오는 날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넘어져 팔꿈치 뼈가 으스러졌고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또 앞니 두 개는 신경 손상을 입어 치아가 변색됐다. 8주 이상 진단이 나와 수술 후 두 달 넘게 병원 생활하다 직장에 복귀했는데, 회사에서 입원 당시 찍었던 엑스레이 사진에 어릴 적 앓았던 폐결핵 흔적이 보인다며 퇴사를 강요했다. 갓 스무 살이던 어린 나는 누구에게 의논해야 할지도, 항의할 방법도 알지 못했다. 억울했지만 강제적으로 첫 직장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여의도의 서점, 종로5가의 건설사무실, 충무로의 화방, 동네 빵집 알바, 종로3가의 제조업체, 종로5가의 케이블회사, 종로1가 보험회사를 거쳐 2019년 은평성모병원에 이어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미화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40년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무난한 직장생활을 꾸려나갔다.
이 또한 지나간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어머님의 모습은 새벽같이 일어나 남대문 시장으로 돈 벌러 나가시는 등 참으로 고단한 모습이었다. 울 아버지는 아이들을 건사하는 살림하는 남편으로 안팎이 바뀐 그런 환경이었다. 어머니의 어깨는 항상 무거웠고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언니들도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날까 결혼을 안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영향으로 아주 늦은 나이인 마흔아홉에 직장 거래처 지인에게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우리집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시댁의 모습에 오히려 가벼운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신혼 초부터 시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고 시어머니의 무시를 견뎌야 했다.
결혼하고 다니던 직장을 나오고, 내가 모은 돈으로 그동안 꿈이었던 퀼트공방을 열어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곳 또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서울을 떠났다. 결국 나는 혼자 남겨진 상황이 되었다.
내 편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일단 간단한 짐만 싸서 친정엄마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하였고, 떨리던 발걸음에 힘을 실어 3년 만에 결혼을 끝냈다. 나에게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 아끼던 공방도 접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혼도 나의 선택, 이혼도 나의 선택이었다. 아니라고 생각될 땐 얼른 미련 없이 털고 나와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늦은 나이지만 아이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를 바라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그게 내 문제려니 생각하시며 미워했고 그 상황에 다행히 자녀가 없었기에 빠른 이혼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결혼 생활이었지만 나에겐 나름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생기고 철도 많이 들었다. 세상살이 너무 나쁘게만 보면 더욱 안 될 일만 생긴다. 이 또한 지나간다. 지나고 보면 더 좋은 날을 만들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연재2-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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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결혼, 3년만의 이혼... 하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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