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원씨가 외국인들에게 한글로 써 준 이름 @권명원
권명원
- 사실 요즘 한국에서도 한글 붓글씨보다 한자 붓글씨가 더 많다고 하니 안타까워요. 그러면 미국에서 활동하신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미국 가자마자 3일 만에 워싱턴 도착해서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 말하자면 국립박물관 같은 곳에서의 일이 기억 납니다. 거기는 다 무료예요. 그런데 그 박물관에 갔을 때 한국관, 중국관, 일본관이 모두 같이 연결돼 있었어요. 근데 한국 작품하고 중국 작품의 내용이 같더라고요. 다 한자 서예로 돼 있고요, 불상도 한국과 중국 모두에 적용되는 것들, 동양화 작품들도 전부 한자로 돼 있다 보니 구분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 학예사와 면담하며 이 내용들에 대한 시정 조치를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얘기가 이미 대사관 측에서 한국 정부에 한 5년 동안 계속 얘기를 해왔대요. 한글 작품 좀 보내달라고, 박물관 내용 시정하겠다고 몇 번 요구를 했다죠. 그래서 제가 직접 대사관에 전화를 해봤는데 똑같은 얘기예요.
그러면 제가 글씨를 쓰는 사람인데 협조를 하고 싶다 해서 몇 개를 보여줬더니 한 6개월 만에 대답이 왔어요. 한번 해보자고. 그래서 '훈민정음 서문' 그리고 '가시리' 두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죠. 그때서부터 한국인들이 오면 그게 한글이니까 금방 알아보잖아요. 한국관이라는 게 구분이 딱 되는 거예요. 한글이 반가운 거죠.
그런 일들이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인연으로 인해서 2003년도부터 2011년까지 해마다 행사를 같이 해왔고, 전통문화축제 같은 곳에서는 한국을 대표해서 45m 대형 붓글씨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죠."
- 재미있는 사건도 많았겠어요.
"급박한 상황에서 멋진 행사를 치룬 경험도 있지요. 텍사스에 있는 샌안토니오 시 컨벤션 센터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world language expo 그러니까 세계 문자 박람회죠. 세계 5000여 명의 학자들이 모였었어요. 국제교류재단에서 함께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한국 학자 70명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준비한 한글의 창제 원리 자료를 나눠주고 학자들한테 소개하도록 하고, 저는 옆에서 한글로 이름 써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인기가 최고였어요. 뭐 중국 사람들도 아주 많이 있었는데도 인기는 한국이 최고였죠."
한자 붓글씨는 한번도 쓰지 않아
- 국제대회에서 한글을 아주 제대로 빛내셨네요.
"학자분들이 뭘 몰라서 못 하는게 아니라 뭘 해야 할지를 몰랐던 거죠. 그래서 그 요령, 다음에 이런 것들을 하게 되면 저런 내용들을 준비하시면 아주 좋다, 말해주었죠. 제가 어느 행사장에 가든지 늘 해오던 일들이니까 금방 내놓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 다 준비가 되어 있었군요. 그럼 가장 보람 있는 붓글씨 행사나 전시는 무엇이었는지요?
"코스타리카에서 약 1700명에게 이름을 써준 것입니다. 반응은 정말 엄청났죠. 대단해요. 그 당시만 해도 싸이가 딱 해외에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거든요. 그런데 코스타리카는 그 전부터도 한국에 대해 되게 관심이 많았어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선생님 나 한국 가고 싶어요!' 할 정도예요. 제가 여러 번 초청 받아서 갔었는데, 그중에서 몇 번은 한글을 주제로 해서 자기들끼리 발표를 하더라고요.
각자 한국에 대해 조사를 하는데, 누구는 한국의 건축, 누구는 한복, 또는 음악, 이렇게 각각 나눠서 주제 발표를 하는데 한국말로 해요. 정말 제가 깜짝 놀랐어요. 그런 사람들이 제가 써준 한글 이름을 받으면 더 반응이 좋은 거죠. 코스타리카 대통령과 장관, 문화예술인들 모두 다 모인 자리에서 거의 1700명의 이름을 다 써주고 왔습니다. 거기서 퍼포먼스랑 특강도 여러 번 했고요. 국립박물관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용비어천가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더라고요. 해당 관련 작품은 제법 큰데, 그곳에 기증을 하고 왔죠.
제가 미국에서 주로 하고 싶었던 거는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문화센터든 간에 한글이 들어가게끔 전시하는 것이었어요. 공공기관에 가보면 정말 한자 서예만 잔뜩 걸려 있거든요. 우리나라 작품의 90퍼센트가 한자로 되어 있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특히 제가 미국에 가서 한글만 쓰게 된 동기가 그겁니다.
제가 해외에서 한자를 쓰면 중국 사람들 도와주는 것밖에 안 돼요. 들러리밖에 안 되는 거죠. 지금 몇 년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설날 축제를 하는데 그때마다 저도 부르고 중국 사람도 부르고 그래요. 둘이서 공동으로 뭔가를 하게 돼요.
처음 제안은 한자로 같이 써주지 않겠느냐 하지만, 저는 당당하게 내가 이번에 한글로 쓴 것을 당신이 한자로 쓰고, 또는 번갈아 가면서 한자와 한글을 쓰자. 아니면 서로 한글 있는 데에는 한자로 조그맣게 쓰고, 한자 있는 데에는 한글로 조그맣게 써서 누구나 다 알아보게끔 유도해서 다 같이 공유하자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놨어요.
그러니까 저는 미국에 가서 한자를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지켜온 거죠. 그래서 제 명함에도 한글 서예가라고 적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