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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거둔 자연에게 예술의 옷을 입히다

'사생死生에서 상생上生으로' 김석환 자연미술전, 31일까지 평택 마안산 등산로

등록 2024.10.17 09:32수정 2024.10.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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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호가 바라다 보이는 마안산은 말의 안장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말과 사람이 친근해지도록 하는 도구, 사람에게도 말에게도 마음을 내주기 딱 필요한 도구, 말의 안장을 따라 내려가면 여선재가 있다. 말의 머리쯤 되는 이곳에는 퍼포머이자 설치미술가, 행위예술가인 카니 김석환 선생이 산다.

카니 김석환 마안산 자연미술전 숲속에서 헤엄치는 고래. 육지동물이었다던 고래의 신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카니 김석환 마안산 자연미술전숲속에서 헤엄치는 고래. 육지동물이었다던 고래의 신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권미강

긴 흰머리 질끈 묶고 포스가 느껴지는 모습만 봐도 '아! 예술가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20여 년을 직접 지은 나비집 여선재에서 다양한 미술 작업을 해오고 있는 카니 선생은 누구보다 자연적인 삶을 지향한다.


작품의 소재도 바람에 꺾인 나뭇가지, 쓰러진 고목, 버려진 잡동사니들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평택호에 나가 떠밀려온 물건들을 건진다. 그리곤 그림을 그리든 붙이고 때우든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들은 여선재 마당 이곳저곳에 두고 누구든 볼 수 있도록 한다. 여선재 옆 코스페이스아트갤러리(이곳도 카니선생이 직접 지었다)에는 그가 만든 작품들이 가득하다.

자연일기 토우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생을 토우에 담은 작품
자연일기 토우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생을 토우에 담은 작품권미강

카니 선생은 굳이 버려진 것들에게 예술의 옷을 입히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왜 우리는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가? 이미 쓰러진 것이라 해도 누군가 희망을 주고 누군가 일으켜 세워준다면 다시 새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자연도 물건도 마찬가지다. 사생死生에서 찾는 상생上生으로 가는 것, 그게 사이불망死而不亡이고 그게 내 작업의 핵심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다 도연명의 '귀전점거'처럼 자연회귀의 의미를 담은 설치작품
자연으로 돌아가다도연명의 '귀전점거'처럼 자연회귀의 의미를 담은 설치작품권미강

그런 작가 정신을 담아서 '김석환의 해비뫼달(日雨山月) 자연미술전'을 지난 10월 15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평택 마안산 등산로에 펼쳐 놓는다. 오래 전 홍대 앞 카페 갤러리에서 '참 자연스러운전'을 통해 버려진 자연들에게 숨을 불어넣은 작품들로 주목 받았던 카니 선생은 이번엔 자연의 품 안에서 자연의 진혼이 아닌 자연의 부활을 보여준다.

숲속의 만트라 버려진 첼로에 그림을 그리고 나무에 설치한 작품. 치유음악 만트라가 몸과 맘을 평온하게 해줄 듯 하다.
숲속의 만트라버려진 첼로에 그림을 그리고 나무에 설치한 작품. 치유음악 만트라가 몸과 맘을 평온하게 해줄 듯 하다.권미강

인간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동안 제 할 일을 해내고 세상을 떠난 자연에게 고마움 마음을 담아 예술의 숨을 불어넣어 새로운 존재로 세상과 다시 만나게 한다. 인간다움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과 마주하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갈 때 품을 제대로 내어주는 것이다.


'해비뫼달(日雨山月)' 시리즈는 카니 선생의 오랜 작업이다. 헤비메탈이라는 하드록 음악장르를 '해와 비와 산과 달'을 적절하게 배합해 패러디한 이 시리즈에는 카니 선생의 해학과 작업의 방향이 동시에 들어있다.

만트라를 듣는 카니선생 첼로로 만든 숲속의 만트라를 바라보는 카니선생 뒷모습이 명상이다.
만트라를 듣는 카니선생첼로로 만든 숲속의 만트라를 바라보는 카니선생 뒷모습이 명상이다.권미강

그래서인지 마안산 등산로를 따라 전시된 작품들의 제목도 참 카니 선생답다.


'자연은 가장 자연스러워야 자연이다'는 의미를 담은 해비뫼달, 말의 안장을 닮은 마안산에 국토는 작지만 세계로 뻗어가는 한민족의 기상을 고구려 벽화 형식으로 표현한 '고구려, 말달리다', 그루터기를 문어머리인 듯, 사람의 뇌인 듯 전생과는 다른 생으로 소생시킨 '소생', 나무 밑둥을 조타수 운전키처럼 만들어 항해의 꿈을 산에서 펼쳤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산을 항해', 죽은 나무에 살던 생명들의 영혼들이 춤추며 다음 생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은 '축제, 함께 춤추다', 육지에서 살았다는 고래의 신화를 마안산에서 표현한 '신화 속으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치유음악 만트라를 들려주는 첼로 '숲속의 만트라' 등등. 총 22점의 설치작품들이 그야말로 마안산 자연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자연일기 토우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생을 담은 토우
자연일기 토우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생을 담은 토우권미강

카니선생이 이번 자연미술전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다다. 서해바다에서 분리돼 호수가 된 평택호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의 혼을 묻어야 했고 그 영혼들이 때로는 바람이 되어, 때로는 비가 되어 함성을 지르며 새 생명을 달라고 울부짖는 듯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물에 걸려 떨어진 게의 집게발처럼 바다와 단절돼 호수가 되어버린 평택호를 통해 사생死生에서 상생上生을 이끌어내는 전시인 것이다. 바싹 마른 삭정이 가지 하나가 조개를 줍던 할머니의 앙상한 팔로 다시 살아나고, 부러진 노 하나가 가는 길을 몰라 헤매고 있는 중생들의 이정표로 살아날 수도 있다고 카니 선생은 말한다.

서핑보드 장승 평택호에 떠밀려온 서핑보드를 주워 장승을 만들었다. 버려진 서핑보드가 새로운 존재가 됐다. 19일 장승제가 열린다.
서핑보드 장승평택호에 떠밀려온 서핑보드를 주워 장승을 만들었다. 버려진 서핑보드가 새로운 존재가 됐다. 19일 장승제가 열린다.권미강

24년 전 자연재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카니 선생은 이미 명을 다한 두두물물에게 부활과 환생의 길을 열어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진정한 상생이라며 예술로 그 작업을 기꺼이 해내고 있다.

거미줄에 걸린 바다살이들 바다였던 평택호를 마안산에 표시해뒀다. 마치 추억을 되새기듯
거미줄에 걸린 바다살이들바다였던 평택호를 마안산에 표시해뒀다. 마치 추억을 되새기듯권미강

축제, 함께 춤추다 목숨을 다한 자연의 영혼들을 위한 즐거운 축제를 표현했다.
축제, 함께 춤추다목숨을 다한 자연의 영혼들을 위한 즐거운 축제를 표현했다.권미강

오는 19일 토요일 오후 3시에는 죽은 자연들이 예술의 옷을 입고 환생한 마안산 입구에서 버려진 서핑보드를 이용해 만든 장승을 세우는 장승제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축하공연이 펼쳐진다. 참 자연스러운 자연미술전이 상생의 축제가 될 듯하다.
#카니김석환 #마안산 #자연미술전 #여선제 #평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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