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데몬 씨가 지난 15일 오후 창원축구센터 숙소동 로비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신 기자
경남도민일보
붉은 악마가 연상되는 빨간 점퍼를 걸친 남성이 불쑥 손을 건넸다. 왼쪽 가슴에는 한국과 스페인 국기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희끗한 곱슬 머리카락, 웃을 때 눈가와 입가에 깊게 팬 주름도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그는 글자마다 의미가 있는 것처럼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왔다. 국적은 스위스, 태어난 곳은 한국이다. 복잡해 보이는 그의 정보는 입양아라는 사실로 요약된다. 늦은 밤 피곤함에 절은 그가 기자와 마주 앉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15일 오후 8시 30분, 창원축구센터 숙소동에서 니콜라스 데몬(62·한국명 이인식)씨를 만났다. 통역은 최관성 재스페인 대한체육회장 도움을 받았다. 데몬씨는 경남에서 열리는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재스페인 선수단장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그가 낯선 땅을 밟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진짜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2019년부터 꾸준히 한국을 찾아 친부모를 수소문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던 터다.
데몬씨는 6살이던 1968년 홀트씨 해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를 거쳐 스위스로 입양됐다. 그가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보면 입양되기 전까지 살던 곳은 서울시 은평구 일대로 추정된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은 단어 몇 개가 전부다.
"은평국민학교, 뒷산, 미군, 뛰어다니던 아이들 정도가 어렴풋이 기억나요."
혹시 뭐라도 떠오를 게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은평초등학교 인근을 찾아갔지만,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뒷산은 이미 아파트로 바뀐 뒤였다.
그는 스위스로 건너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생김새로 주변 아이들로부터 놀림도 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참지 않았다. 데몬씨는 어릴 적 자신을 '승부욕이 강한 아이'로 기억했다. 외모도 언어도 다른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늘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이른 방황을 시작했다.
흔들리는 그를 붙잡아 준 사람은 양아버지였다. 어떤 일이든 데몬씨를 믿고 보듬어줬다. 데몬씨 정보가 담긴 입양 서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물려줬다. 한 차례 방황을 마친 데몬씨 삶은 순탄하게 흘렀다. 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서 정형외과 의사가 됐다. 현재는 스페인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