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원역사 앞 삼일운동기념비
이완우
남원시 동충동에는 (구)남원역 역사, 승강장과 철도 선로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구)남원역사 앞 광장에는 삼일운동기념비(三一運動記念碑)가 서 있다.
지난 16일 (구)남원역을 찾아가 보았다. 삼일운동기념비 주위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고,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 도로에서 접근하는 길도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삼일운동기념비 양 옆에는 두 그루의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가 무성하게 자라 우뚝 서 있었다. 개잎갈나무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들어와 국내에 퍼진 대표적 수종으로 일제 잔재로 알려져 있다.
(구)남원역 역사와 철도 부지는 조선 시대에 남원읍성 북문터 자리였다. 일제는 1931년에 전라선 철도를 남원까지 부설하면서 남원성 북문터에 남원역을 세웠고, 1933년부터 철도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남원역은 2004년에 남원시 신정동으로 이전했다.
남원읍성을 헐고 그 자리에 남원역 지은 일제
400여 년 전인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은 전라병마군 1000명, 명나라군 3000명, 승병과 남원 백성 7000명이 남원성을 포위한 5만8000명의 왜군 병력에 맞서 당당하게 사흘 밤낮을 싸웠다. 남원성이 불타고 차례로 함락되며 마지막 북문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었고 성안에서 왜군에게 항쟁한 일만 명이 순국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일부러 전라선 철도의 남원 구간 선로가 남원성 북문터를 지나가게 설계했다. 일제는 남원읍성을 헐고 그 자리에 전라선 남원역을 지었다.
(구)남원역 구내에서 수백 미터(m) 떨어진 동북에는 선로 구배가 심하면서 곡선으로 휘돌아가는 철도가 놓였고, (구)남원역을 지나 서남쪽으론 곡선으로 휘돌아가는 철도가 놓였다. (구)남원역은 철도역으로 삼기엔 지형 조건이 불리한 곳인데도, 일제는 정유재란의 대표적 항쟁지인 남원성을 파괴하려고 남원성터로 철도가 지나가게 하고 북문터에 남원역을 조성하였다.
남원성 북문터에는 남원성 전투에서 순국한 만 명의 무덤인 만인의총(萬人義塚)의 원래 무덤과 충렬사가 있었다. 일제는 남원성 북문터와 만인의총 원래 무덤 자리를 (구)남원역 부지로 편입하고 철도를 놓은 뒤 증기기관차의 타고 남은 석탄 찌꺼기를 퍼부었다. 만인의총과 남원성을 짓밟으며 남원성 전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였다.
만인의총과 충렬사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구)남원역 부지와 가까운 북쪽에 모셔져 있다가, 1964년 현재의 남원시 향교동으로 이전했다. 도편수 이한봉(李漢鳳, 남원 광한루 방장정 시공 도편수)씨는 만인의총 봉분을 모시고 부속 건축물을 세웠다.
일제는 남아있던 남원성 성벽을 뜯어내어, (구)남원역 승강장의 기초석 석재로 활용하는 등 남원성에 서려 있는 민족혼을 짓밟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구)남원역 승강장 옆의 선로에는 현재 잡초가 무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