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권우성
- 전문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방안인가.
"현재의 전세 시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전세 선호를 더 높이는 방안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 전세는 줄여가야 한다는 말인가.
"개인 의견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세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의 특이한 제도다. 2018년 방한했던 UN 주거권 특별보고관(레일라니 파르하)도 한국의 전세제도를 보고는 깜짝 놀라 전세가 종국적으로는 서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때 국내에 주거권 운동가들도 크게 의아해했었다. 그만큼 전세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국내에 없었던 거고, 전세가 월세보다 싸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던 거다. 그러나 UN 특별보고관은 '일시불로 높은 보증금을 지불하는 전세의 특성으로 인해 집주인들은 빠르게 다주택자가 될 수 있고, 집값이 상승한다'고 간파하면서 결국 전세제도 폐지를 권고했다. 외국에선 보증금이라고 해 봤자 보통 2~3개월치 월세가 전부다."
-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전세가 월세보다 저렴한 건 사실 아닌가.
"맞다. 당장, 개별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전체적으로 봐도 그럴까? 임차인들은 전세보증금만 맡겨두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전세를 선호하지만, 임대인들은 왜 전세를 놓는 걸까? 다달이 꽂히는 월세 수익을 포기하고 2년 후에 돌려줘야 할 목돈을 받는 이유가 뭘까? 무이자로 큰 돈을 조달해 다른 집을 사기 위해서다. 기본적으로 임대인이 전세를 놓는 목적 자체가 시세차익인 것이다.
그런데 2015년부터 정부가 정책적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확대했다. 실제 2015년에 20조 원 규모였던 국내 전체 전세대출 잔액이 2022년 170조 원으로 폭등했다. 목돈이 없어 전세로 살지 못하고 월세로 사는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이었겠지만, 이는 전세 수요를 확대시켜 전셋값을 상승시켰고, 다시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그 사이 임대인들은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삼아 다른 주택을 사서 이익을 본 반면, 임차인들은 주택가격이 오른 여파로 집을 구매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거나, 같은 수준의 전세를 유지하려 해도 더 많은 보증금을 구해야 했다. 월세로 하향하는 경우도 생긴다.
정부로서는 이는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또다시 전세대출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서민들을 위한 선의의 정치인 것 같지만, 다시 전셋값·집값 상승을 야기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원룸·오피스텔까지 전세를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년 전만 해도 원룸·오피스텔 전세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원룸·오피스텔은 가격이 잘 오르지 않기 때문에, 월세 수입을 얻으려는 투자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원룸·오피스텔까지 전세를 두기 시작했을까? 임대인들이 원룸·오피스텔 전세보증금마저 다른 집에 투기하기 위한 목돈으로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다 집값 떨어지면? 전세보증금 못 돌려주는 것이다. 원룸·오피스텔인데 전세로 놓는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사기라고 봐야 한다. 심지어 근래에는 다중주택까지 전세로 놓고 전세사기를 하는 사례까지 있더라."
- 해외에는 보다 신뢰할 만한 기업형·공공 임대주택이 많지만 국내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처럼 기업형 임대주택이나 공공 임대주택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도 전세 때문이다. 기업이나 공공이 거액의 돈을 들여 임대주택을 짓고 나면 월세를 받아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우리는 소비자들이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공공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를 놓을 수밖에 없다. 전세는 보증금을 받아봤자 다시 돌려줘야 해서 현금흐름이 전혀 생기지 않고, 따라서 기업이나 공공은 비싼 투자를 하고도 10년간 돈 한 푼 안 생긴다. 10년쯤 지나 시세 차익이 생겼을 때 팔고 나서야 수익이 실현되는 구조인 것이다. 기업이나 공공 입장에서 10년씩이나 돈이 묶이는 투자를 활발히 할 수 있겠나? 전세는 오로지 주택투기 시장에만 도움이 되는 제도다."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해 실태 관리해야"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 제도는 수명을 다했다'고 발언한 걸 보고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여기까지 왔나' 싶기도 했지만, 장관은 금세 말을 주워담았다. 2022년 기준 전체 전세보증금 규모가 1058조 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전세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집이라면 전세로 사나 월세로 사나 주거비가 똑같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소득 공제나 세액 공제 등의 혜택을 부여하면서 점진적으로 월세를 늘려가야 한다.
정치권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전세사기 사태 후 2년이 지났지만 피해구제책만 나왔을 뿐, 예방책은 전무하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인 이유는 정부가 전세대출을 늘리고 보증까지 해주면서 사실상 현금흐름이 없는 임대사업자들을 대규모로 양산해 투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수백 채, 수천 채를 모두 전세로 돌리던 사례들도 보지 않았나. 일단 모든 임대주택을 등록 의무화해 정부가 현황 관리부터라도 시작하자. 전세사기로 시민들을 그렇게 잃고도 정부가 아직 기본적인 실태 관리도 못 한다는 건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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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오피스텔이 전세? 사기일 확률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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