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그렇게 별 일 없이 잘 지내다가 친정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는데, 몇 번의 고비를 넘기시더니 세상을 떠나셨다. 2년 뒤 둘째 여동생이 뇌종양으로 투병하면서 우리 가족은 너무 괴롭고 슬픈 시간을 보냈다. 1년쯤 누워 있던 둘째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엄마는 하루도 눈물을 멈추지 않으셨다. 엄마는 매일 기도하며 여동생 생각으로 괴로워하시다가 1년 뒤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우리 가족은 모두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엄마를 간호했는데, 3개월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남은 3남매는 힘들고 슬펐다. 나는 그동안 큰일 없이 잘 지냈는데, 이 시기의 몇 년 동안 가장 큰 고통과 슬픔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식당을 한 지 7년째 되던 어느날, 남편이 "이제 그동안 못했던 것, 여행도 하면서 즐겁게 살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남편이 폐암에 걸렸다. 그래도 초기에 발견하여 수술이 잘 되어 잘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이전과 같이 술과 담배를 했다. 그러다 1년 뒤 폐암이 재발했고, 다른 데까지 전이되었다.
혼자 장사를 하고 매일 병원에 드나들며 2~3개월 정도 간병을 했다. 남편은 평소처럼 말을 하면서 괜찮은 듯했지만,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안 좋아졌고, 결국 애들을 다 불러서 보고는 눈을 감았다. 나와 애들은 괴롭고 슬펐다. 그렇게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난 뒤 나는 식당을 접고 집에만 있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지내며 집에만 있다 보니,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고 너무 허전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려 밖으로 나갔고 무조건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친정 동생들과 우리 애들이 매일 교대로 찾아와 나를 혼자 두지 않으면서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앞으로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계속 무의미하게 집에 있었으면 우울증이 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밖으로 나오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며 '나'라는 자신을 찾게 되었다.
날개를 펴고 나의 세상을 날다
남편과 사별 후 집 밖으로 나갔다. 장사하며 친분이 있던 사람들과 모임도 만들고 산악회도 가입해 사람도 만나고 여행도 다녔다. 혼자라고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즐겁게 지내며 그동안 살면서 못했던 것을 하면서 살맛이 났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막상 집 밖으로 나와져 보니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집안일과 식당을 운영한 경험밖에 없었다. 2017년 직업소개소를 찾아가 가입하고 식당 시간 타임 알바를 시작했다. 하다 보니 옆에 동료들이 "식당은 힘들다. 가정집 가사도우미는 어떠냐?"고 해서 가사도우미로 일주일에 세 번 하며 2년 넘게 하였다.
일을 하다보니, 어차피 할 거 4대 보험 되고 퇴직금 있는 곳에서 하는 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 소개로 주 5일 일하고 4대 보험에 퇴직금이 있는 빌딩청소에 지원했다. 가사도우미를 그만두고 몇 개월 쉬고 나서, 2021년 2월 1일 세브란스 빌딩에 첫 출근을 했다. 처음 직장생활을 해서 조금 긴장하고 어색했다. 제일 힘든 층을 받았지만, 열심히 일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짝꿍 언니를 통해 몇 명 언니, 동생들과 알고 지냈다. 모두 성격도 좋다며 나를 좋아했다.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냈다.
내가 받은 곳이 힘든 층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무런 사고 없이 1년 하고 쉬운 층으로 갔다. 1층 로비로 지정받았는데, 소장이 부르더니 "1층 로비가 문제가 많았던 곳인데, 제발 조용히 원만하게 지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우리 네 명은 1년을 지내면서 한 번도 문제없이 너무 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