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owl of fried chicken pops
alfonsoluis on Unsplash
저녁 식사 후에도 고기 파티는 이어졌다. 밥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파할 나이라지만, 식사 후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외부 음식들이 속속 배달됐다. 아이들이 주문한 배달 음식은 예외 없이 치킨이었다. 종일 고기만 먹어놓고 야식으로 또다시 고기를 찾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난 27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 이것이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이 달고,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쫄깃한 식감의 음식만 찾는다는 것! 스마트폰에 길들어져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과 운동량이 부족해 체력이 약해지는 것 등은 차라리 차후 문제다.
섣부르지만, 10대 아이들의 입맛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흔히 나중에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입맛도 변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그렇게 낙관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지금 20~30대 청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10대 아이들과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비유하자면, 랩과 록 음악을 즐기는 10대가 6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트로트 음악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인식과 비슷하다. 수학여행이든 학교 급식이든 아이들이 좋아하니 고기반찬 일색이고, 그 맛에 길들어지니 그것만 찾게 되는 악순환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은 의미 없다.
고기반찬 일색인 학교 급식을 탓할 건 아니다. 채소나 해산물이 주메뉴인 날은 잔반통이 순식간에 그득 찬다. 매일 교사들이 잔반을 남기지 않도록 급식 생활지도를 하지만, 사실상 하나 마나다. 먹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강요했다간 학부모로부터 아동 학대로 고소당할 수 있다.
잔반이 남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고기반찬만 제공하는 것이다. 불고기가 나오는 날엔 함께 제공되는 김치와 국, 그리고 두세 종류의 밑반찬은 배식대에 굳이 꺼내놓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의 식판 위엔 달랑 밥과 불고기, 이 둘뿐이다. 이날은 굳이 잔반통도 필요 없다.
일부 지방정부에서 도입했던 '채식의 날'이 흐지부지된 것도 아이들과 학부모의 민원 때문이었다. '채식의 날'을 일주일에 한 번 시행했다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가 이젠 고기반찬을 줄이는 걸로 뒷걸음질 쳤다. 아이들에게 '채식의 날'은 '매점에서 점심 때우는 날'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따지려 들면 원인이야 수만 가지일 테지만, 어려서부터 집밥을 먹지 않은 세대라는 걸 첫손에 꼽아야 할 성싶다. 아침을 거르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태반인 데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날이 주말뿐인 현실에서 집밥이란 광고에서나 등장하는 단어다.
그나마 주말 저녁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해도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게 다반사라고 한다. 편리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모가 요리에 서툴러서이기도 하다. 신세대 부모일수록 배달 음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아예 집밥을 브랜드화한 '음식 상품'이 온오프라인에 즐비하다.
이제 김치를 담그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고, 반찬도 주문해서 먹는 집이 대다수다. 밥상을 차린다는 건, 상품의 포장을 뜯어 그릇에 담는다는 뜻일 뿐이다. 집에서 직접 하는 요리는 쌀을 씻어 안치는 걸 제외하면, 라면을 끓이는 등의 인스턴트 음식이 고작이다.
"저처럼 크게 아파봐야 식습관을 바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