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거리여행중 만난 비오는 풍경
어혜란
지난주 아침이었다.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창문 너머로 '쏴'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귓전을 때렸다. 얼마 전부터 가을비 예보 소식이 있더니 아침부터 심상치 않은 양의 비가 쏟아붓고 있었다.
'큰일이네, 책 반납하러 가야 하는데'.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의 반납기한이 그날까지였다. 이런 날 족히 집에서 30분은 더 걸어가야 당도하는 도서관에 간다는 것은, 바지를 입든, 치마를 입든 옷의 밑단이 홀딱 젖는다는 걸 뜻했다.
한 손은 우산에게 내어주어야 하니, 남은 한 손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컸다. 비 오는 날에 문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 있다는 건 무척이나 성가신 일이다. 비는 모든 것에 걸림돌이 된다. 되도록이면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비 오는 날을 피해 약속을 잡는 이유다.
'아, 진작 반납할 걸' 맑은 날 가지 않고 베짱이 마냥 게으름을 피운 것이 후회됐다. 고심 끝에 빗줄기가 가늘어지면 집을 나서기로 결단을 내렸다. 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한 찜찜함도 컸지만, 아침부터 귓전을 때릴 만큼 굵은 빗줄기를 보니 마음이 심란하고 축 가라앉았다. 체력까지 똑 떨어졌다. 오랜만에 비 소식이었지만 달갑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커피일까.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창밖에 내리는 비를 감상하는 기분이란. 아침부터 축축 처지는 마음도 다독일 겸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창가로 갔다.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의 흥겨운 왈츠를 지켜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며 싸르르 하게 가슴을 데워주는 느낌이 좋았다. 높은 습도 때문일까. 비 오는 날은 어떤 향이든 더 진하게 느껴진다. 유난히 비 오는 날의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진하게 풍기는 향 때문이겠지.
사실, 나는 평소 향 제품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가끔 지인들로부터 룸 스프레이, 디퓨저 등을 선물받긴 했지만 한두 번 시향을 해 본 게 전부다. 모두 서랍 속에 모셔두고 있다. 인공적인 향은 특히나 즐기지 않는다.
그런 내가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주말에 있을 지인 초대를 앞두고 준비해야 할 음식을 위해 장을 보러 간 어느 오후였다. 식료품 쇼핑을 마치고 마트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절향이 나는 풀 내음이 짙은 향기가 코끝을 타고 스며들었다.
일순간에 기분이 전환되며 공간이동을 한 듯 마치 나무가 빽빽한 숲의 한가운데에 놓인 느낌이었다. 우드향이 기분 좋았다. 밀페유나베처럼 겹겹이 쌓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장을 보느라 긴장하고 지친 마음도 풀어진 듯 차분해지고 안정감이 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거 무슨 향인가요?" 홀린 듯 매장으로 들어가 향의 이름을 물었고, '인센스스틱' 이라는 것을 구입하게 됐다. 인센스스틱은 불을 붙여 연기를 내는 향을 말한다. 아로마 오일을 섞은 반죽을 빼빼로 형태로 만든 후 불을 붙여 사용한다.
쉽게 말해 절에서 사용하는 향이라 생각하면 된다. 원래는 종교의식과 치료를 위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향 덕분에 요가와 명상을 할 때 외에도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날 구입했던 인센스스틱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를 집어 스틱 끝에 불을 붙이니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성냥의 머리처럼 붉어졌다. 생일 초를 끄듯 '후' 하고 불자 가느다란 한 줄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