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계절근로자 인신매매, 임금착취 규탄 기자회견에 참가한 피해자들
이건희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이주노동자들은 필리핀에서 계절 노동자로 선발된 후 브로커에게 '출국 전 대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한국에 갈 수 없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피해 노동자는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브로커 계좌로 급여의 일부를 송금하도록 강요 받았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강제 귀국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한국에 와서 통역사들에게 부당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통역사들은 도움을 주지 않았고, 고국에 남아 있는 가족이 협박을 받기도 했다며 고통을 토로했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외국인력 도입정책인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브로커를 거치지 않고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지만, 법무부가 운영하는 계절근로자제도는 별도의 공적 송출 시스템 없이 지자체에 운영을 맡기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전문가와 피해자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철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이 제도로 인해 계절근로자들이 착취 당하고 있으며, 인신매매 피해자가 발생한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런 인신매매는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법무부는 계절근로자 제도를 '공공형'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계절근로자 제도는 현재 모집과 송·출입이 완전히 사적인 시장에 맡겨져 있는 그래서 브로커가 활기 칠 수밖에 없는 심지어는 브로커가 모집과 송출을 위탁받은 제도로 한마디로 좌초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폐지된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의 부활?
17년 전 사회적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이미 폐지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제도의 부활을 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소장(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은 출국 전에는 허위 대부 약정서 작성, 연대보증인의 지불 약정, 입국 후 여권 압류, 급여 강제 자동이체, 이탈한 노동자에 대한 SNS 현상금, 허위 이탈신고 등 현재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입고 있는 피해는 가히 현대판 노예제라고 국내외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산업기술연수제의 부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공공성 관철과 근본적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계절근로자 제도의 법제화, 브로커 개입 근절을 위한 전담 기관 설립, 투명한 정보 공개 및 감독 체계 강화를 요구했다. 또한 제도적 결함을 통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민간 브로커의 개입을 막기 위해 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인신매매피해자권익보호기관에서 계절근로자들이 '인신매매피해자'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이런 피해가 발생한 운영 지자체, 기관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인신매매 피해 이주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체류 자격 변경과 향후 계절근로자 제도 참여 보장도 촉구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농어촌의 인력난을 해결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형태로 변질 되었다'며 정부와 법무부의 책임 있는 제도 개혁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