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일 전 구로구청장.그는 법원의 이해충돌 가능성 해석에도 불구, 주식 대신 구청장을 포기했다. 이로 인해 구로구는 재보궐 선거에만 30여억원에 달하는 혈세를 써야 할 상황에 놓였다.
구로구 제공
지난 10월 15일 문헌일 구로구청장이 사퇴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퇴로 구민과의 약속이 었던 공약 자체는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 보궐선거 집행에 필요한 혈세만 수십억 원을 날리게 된 것입니다. 그 돈이면 구로구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곧 닥칠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메울 수 있겠습니다.
문 구청장의 이번 사퇴는 4년 임기 중 절반을 남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백지신탁을 거부하고 사퇴한 최초의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백지신탁을 거부하고 구청장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법원 "이해충돌방지 인정"... 문 구청장 "관련 없다" 맞불
그는 1990년 '문엔지니어링'이라는 정보통신회사를 세웠습니다. 문엔지니어링에 대해 좀 더 검색해보니 전체 사원수 130여 명의 ICT 분야 컨설팅과 엔지니어링 사업개발, 정부사 업과 공공사업을 주로 수행하는 기업으로 나옵니다. 그가 구청장 선거 출마 직전까지만 해도 미얀마 등 해외사업을 여럿 수주한 실적도 있습니다.
발단은 바로, 문헌일 구청장이 갖고 있던 주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문엔지니어링' 주식 4만8000주 등 무려 170억 원대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해 3월, 문 구청장이 소유한 '문엔지니어링' 주식에 대해 이해충돌방지(공직자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사적 이익추구를 금지함으로써 공정한 직무수행과 국민신뢰를 확보하기 위함) 가능성을 이유로 백지신탁을 결정했습니다.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본 거죠.
문 구청장은 이에 불복, 바로 행정 소송을 냈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주식과 구청장으로서의 직무는 서로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의 해석을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구청장으로서의 업무를 통해 회사의 경영이나 (본인의) 재산과 관련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문 구청장은 1심, 2심 모두 패소했습니다.
재판부에서의 결정도 백지신탁심사위원회의 손을 들어주자 문 구청장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남았습니다. 구민들과 약속한 대로 구로를 '4차 산업을 선도하는 첨단산업도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든지, 아니면 구청장직을 버리고 주식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주식 170억원과 맞바꾼 40만 구로구민의 신뢰
그는 결국 구로구민이 아닌, 자신의 '주식'을 지키는 선택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당선 2년 만에 구청장 자리가 공식이 되면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내년 4월까지는 엄의식 부구청장이 권한대행으로 자리를 대신합니다. 행정 공백이 발생하고 구로구의 역점 사업에도 제동이 걸리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구민의 혈세'가 그대로 낭비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제정세 악화로 지역자치단체는 물론 나라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불명예로 재선거를 불러온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커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한 구로구 주민은 "책임감을 갖고 공약을 내 걸고 기대를 받았으면, 충실히 이행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 무책임하다. 모두 혈세 아니냐"라고 한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