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는 한국 언론 보도 제목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여론조사 수치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보도하는 방식은 더 심각하다. 여론조사 결과 두 후보 간 차이가 오차범위 안에 있을 때 '앞선다'거나 '이기고 있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 2016년 제정된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 제16조(오차범위 내 결과의 보도)는 "지지율 또는 선호도가 오차범위 안에 있을 경우 순위를 매기거나 서열화하지 않고 '경합' 또는 '오차범위 내에 있다'고 보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차범위가 ±4.8%인 여론조사 결과 A후보자와 B후보자의 지지율이 각각 45%와 44%였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조사결과 의미는 실제 유권자 집단 전체에서 A후보자를 지지할 확률은 최대 49.8%에서 최소 40.2% 범위 안에 있고, B후보자를 지지할 확률은 최대 48.8%에서 최소 39.2% 범위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투표에서는 A후보자가 1%포인트가 아니라 최대 10.6%포인트 차이로 이길 수 있으며, 반대로 B후보자가 1%포인트 차이로 지는 게 아니라 최대 8.6%포인트 차이로 이길 수도 있다.
그래서 조사결과 수치 차이가 오차범위 안에 있을 때 '앞선다'거나 '이기고 있다'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것인데, 한국 언론은 그 표현을 고집스럽게 쓴다. 혹시 일이 잘못되면 여론조사 회사의 잘못이라고 떠넘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것을 확정적인 사실인 양 보도한 언론의 잘못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여론조사 오차범위 무시, '경마식 보도' 치중
여론조사 수치에만 집착하다가 선거 결과가 예측과 다르게 나오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샤이(shy)' 지지자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샤이가 아니라 오차범위에 대한 언론의 무지와 무시일지도 모른다. 한국 언론은 여론조사 1%포인트 차이가 ±4.8%의 오차범위 때문에 실제 결과에서 최대 10.6%포인트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언론이 오차범위 문제에 별 관심 없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 미국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오차범위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조차 적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차범위는 언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가 꽤 차이 나는 일이 잦아지면 선거 과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선거 조작 의혹 제기나 선거 결과 불복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언론은 여론조사 수치를 보도할 때 지금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대응을 묻는 언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