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우유학교 우유 급식용 우유. 종종 아이들이 마시지 않은 '남는 우유'가 생긴다.
우현주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아침에 층마다 복도를 돌며 불을 켜고 있었는데, 어느 반에서 마시지 않은 우유 4팩이 우유 상자 옆에 나와 있더라는 거였다. 마침 너무 목이 말라서 자기가 그 우유를 다 마셨다면서, 그리고는 내심 찔려서 나한테 고백을 하러 온 거였다.
나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는 우유는 폐기 대상이라 집에 가져가고는 있었지만, 우유가 계속해 쌓이는 바람에 좀 처치 곤란이던 참이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우유를 마셨다니 손이 가벼워져서 도리어 고마울 판이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목이 말라 그랬다' 며 연신 사과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순간 나는 아저씨의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할 말을 찾는 사이 아저씨는 총총 다시 사라졌다.
아저씨의 말이 그 후에도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렇게 말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우유를 마음대로 가져가서 미안하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뭔가 너무 과한 것 같았다. 마치 본인이 주제 넘는 행동을 해서 잘못했다고 하는듯한 자세였다.
이제 다시 보이는 학교라는 세계
학교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니 학교라는 세계가 어릴 때와는 다르게 보였다. 어릴 때에는 학교에는 단지 두 부류의 사람만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 물론 그때도 수위 아저씨가 있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식당 매점 노동자들(주로 아주머니들이라 불렀다)도 있었지만,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그때는 우리, 즉 학생이 모든 걸 다 했다.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고, 우유도 직접 날랐다. 칠판을 지우는 것은 물론, 교실 청소도 당연히 학생이 하는 거였다. 교실 뿐 아니라 화장실 청소, 화단 청소, 계단 청소도 반마다 나누어서 했다(물론 '해야 하는 것'과 '제대로 했느냐'와는 다른 문제겠다).
요즘은 선생님과 학생 이외에도 학교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시설만 따로 관리하시는 분(이분의 직함도 제대로 모른다. 아침에 내가 우유를 나를 때 항상 화장실을 손보고 계신다. 이것저것 학교 기물을 수리하시는 분 같다. 이 글을 쓰며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 찾아보니 '교육공무직 학교 시설관리직원'이라고만 나온다)이 있다.
그 외에도 급식 조리원, 배식원, 보안관, 지킴이…. 이외에 급식 식자재 및 내가 하고 있는 우유 납품 업체 등 많은 사람이 학교와 연관을 맺고 있다. 나를 포함해 이들에게 학교라는 곳은 단지 하나의 '일터'일 뿐이다.
학교가 일터가 되면, 이 세계에는 분명히 층위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선생님과 학생은 그 위에 있고 나처럼 몸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밑에 존재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학교 안의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랄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속에서 일하는 나는 내심 그 차이를 감지하게 된다.
일단 호칭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여성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선생님'과 '여사님'으로 나뉜다.
지금은 그나마 존중하는 의미에서 '여사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그냥 '(매점 혹은 식당) 아줌마'였다. 나는 학원에서 알바하며 '선생님'이라고도 불려보고, 학교 급식 배식, 방역 일을 하면서 '여사님'도 되어 봤다. '선생님'과 '여사님'일 때의 기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좁히기 어려운 거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