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조선총독부가 1909년부터 1917년 사이에 만든 축척 1:50,000인 <조선지형도>에서 '울산바위'는 울산암으로 보인다.
이무완
금강산에 들지 못해 눌러앉은 울산바위
울산바위 이름을 옛 땅이름인 '천후산'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있는 모양이다.
잘 알다시피 울산바위는 둘레가 4㎞, 높이가 해발 873m인 화강암 덩어리로 '바위'보다 '산'이라고 해야 할 만큼 웅장하다.
우리가 아는 울산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지을 때 경상도 울산 땅에 있던 울산바위도 금강산 한 자락에 들려고 오다가 그만 때를 맞추지 못해 지금 자리에 풀썩 눌러앉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울산에서 온 바위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나 실제로 그런 일이야 있을 수도 없고 그저 말재기들이 지어낸, 재미난 이야기일 뿐이다. 땅이름에 얽힌 전설쯤이야 어디에나 있게 마련 아닌가.
'천후산', '이산'... 울산바위의 다른 이름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천후산'이나 '이산'이란 이름을 없애고 지금처럼 '울산바위'만 남았으니, 옛 이름인 '천후산'으로 바꿔 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듣자니 '울산바위 옛 지명, 천후산을 찾아서'라는 포럼(2024. 11. 7.)에서 나온 주장이다.
일본강점기에 천후산이나 이산 같은, 겨레의 기상을 나타내는 땅이름을 '말살'했으니, 강원도민의 정체성을 찾는 첫 길이 바로 울산바위라는 이름을 선조들이 만든 천후산으로 바로 잡는 것이라는 얘기다. 들어보면 아주 사리에서 벗어난 말은 아니지만 뒤끝은 개운하지 않다.
말처럼 '천후산'이란 이름은 옛 기록 곳곳에 나온다. 이를테면, <동국여지지>(1650)는 '천후산은 하늘에서 비나 눈이 오려고 하면 산이 스스로 울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적었다. <여지도서>(1765), <대동여지도>(1861), <관동읍지>(1867)에도 '천후산(天吼山)'으로 나타난다. <수성지>(1633)는 "천후산은 산의 동굴에서 부는 바람이 많으며 산 중턱에서 나온다. 이를 두고 하늘이 운다고 하며, 세간에 전하기를 양양과 간성 사이에는 큰 바람이 잦은데 이 때문이라고 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록'으로 따지자면 '울산'도 아예 근본 없는 말은 아니다. '울산(蔚山)'이란 이름을 한자 풀이해 보면 울타리 모양을 한 산이다. <간성읍지>(1884)엔 '울산암(蔚山巖)'으로, 일제강점기에 나온 <조선지형도>(1909~1917)엔 '울산암'(鬱山巖)이라고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기이한 봉우리가 꾸불꾸불하여 마치 울타리를 세운 듯하다'고 했다. 병풍이 둘러선 듯 우뚝 솟은 여섯 봉우리를 울타리로 보아 울타리 '이' 자를 쓴 '이산'(籬山)이라고도 했다.
우리말 땅이름이 먼저다
내 보기에 이름이 무엇이든 모두 '울'이라는 소리를 공통으로 품고 있다. 보는 눈에 따라 울 후(吼), 울타리 울(蔚), 무성할 울(鬱), 울타리 이(籬) 같은 말로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 적을 수 있겠다. 다만 '우는/울/울타리'라는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한자로 적은 사람은 땅에 엎드려 나물 뜯고 약초 캐던 백성이 아니라 한문깨나 읽은 벼슬아치나 구실아치, 그도 아니라면 양반들이다.
'울돌/울돌목'을 '명량'(鳴梁)으로 쓰고, '울음산'을 '명성산'(鳴聲山, 철원)으로 바뀐 데서도 알 수 있듯 우리말이 먼저 있고 뒷날 한자로 받아 적은 땅이름이 생겨났다고 봐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울돌(목)은 물이 우는 곳이란 뜻으로 지은 땅이름으로 '명량'보다 땅 모양새를 훨씬 더 잘 나타낸다.
그러니 '울산바위'라는 백성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이름을 버리고 오히려 그 말을 뒤친 한문 기록에 기대어 '천후산'이나 '이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아닌지 톺아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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