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1 14:45최종 업데이트 23.11.11 14:45
지난 8일 경북대 인근 카페에서 '이태원 참사 1주기, 세월호 참사 9주기 대구지역 청년·대학생이 함께하는 피해자 간담회'가 열렸다.

이야기 손님으로 이지현씨(가명, 희생자 이지민씨 언니), 조경미씨(희생자 조경철씨 누나), 장애진씨(세월호 참사 생존자), 장동원씨(장애진씨 아버지,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총괄팀장)가 참석했다.
 

지난 8일 경북대 인근 한 카페에서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간담회가 열렸다. ⓒ 조수범

 
간담회에서 이지현씨와 조경미씨는 떠난 동생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참사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지금 마음이 어떤지', '국가가 자신들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이루어지게 꼭 도와주세요"

경철은 조경미씨에겐 손재주가 많고, 애교도 많은 동생이었다.


참사 당일 조경미씨는 코로나 격리 중이었다. 동생한테 가고 싶었는데, 코로나 격리로 인해 가지도 못해 24시간 동안 못 찾았다고 한다. 조경미씨는 경찰, 소방관, 한남동 주민센터 공무원분들과 싸우면서 겨우 위치추적을 하며, 동생이 성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동생의 사망진단서에는 22시 05분 사망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23시 30분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사십구재, 100일, 200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100일 때,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경찰은 막고 있었고, 갑자기 시청 직원들이 조경미씨를 밀어서 넘어져 눌릴 뻔했다고 증언했다. 이때 '내 동생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 200일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집회를 했는데, 경찰과 유가족의 충돌이 있어 다친 이들이 여럿이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2차 가해도 심했다고 했다. '시체 팔이 한다', '왜 우리 세금을 너희에게 줘야 하냐'는 말이 난무했다는 것. 그는 "정작 유가족은 보상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상민 장관 탄핵이 기각될 때에는, 보수단체들이 유가족을 향해 '북한 소행이다', '자식 팔아서 뭐 하려 하나'라며 2차 가해를 했는데, 이때 조경미씨는 경찰에 밀려 바닥에 쓰러졌다고 설명했다. 
 
"꿈에서 경철이가 '누나 울지마. 누나 책임 아니니까'라고 했다.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가는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지현씨는 사고 당일 밤 11시 즈음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몰랐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동생을 찾아 순천향대 병원에 11시 55분쯤 도착했는데, 응급실의 광경은 너무 평화로웠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느끼기에 "이태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듯했다"는 것. 

경찰 등에 '피해자들이 어디 있냐'라고 물어봤는데, 개인정보라 말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결국 이씨는 서울의 병원을 다 돌다가, 2시간 만에 서울대 병원에서 동생을 찾았다. 그에 따르면, 다른 이들은 12시간이 지나서 피해자를 찾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지현씨는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활동 등에 함께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1년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 속상하다. 진전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한 명이라도 책임을 지면,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 같다. 1주기 때 대통령의 행보를 보고, '우리의 길이 후퇴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더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신씨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 옆에서 2차 가해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정 고소를 했는데, 기각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이런 상황을 보고 겪으며 '정부가 대놓고 2차 가해를 주도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지현씨는 동생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영상을 찾았다고 한다. 그 영상에서 경찰관과 소방관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의식이 돌아온 거예요?'라는 경찰의 질문에 소방관분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영상으로 추정해볼 때, 그때가 11시 전후였다. 이씨는 "그런데 동생은 11시 55분에 구급차에 탔고, 구급 일지에는 이미 처음부터 심정지 상태였다고 적혀있었다"며 "우리는 많은 의혹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거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선 아직 알 수 없는 수많은 의혹과 시스템의 모순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국가의 책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오히려 국가로 인해 더 고통받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지쳤지만, 연대하며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이 롤링페이퍼를 전달했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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