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1 07:07최종 업데이트 24.08.0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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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1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건립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25일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 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 보도자료의 일부 ⓒ 서울특별시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겠다면서 '숭고한 호국의 뜻을 기리는' 100미터 높이의 대형 태극기와 '꺼지지 않는 불꽃' 등 상징물 설치 계획을 내놓자 "시대착오적이다" "북한 아니냐"는 많은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오세훈 시장은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서울시의 의견 수렴은 '답정너' 설문조사

우선 서울시가 이야기하는 의견 수렴의 방식이 공론장을 통한 논의가 아닌, 설문 조사식 시민 의견 수집 방식이라는 것이 문제다. 시민 모두가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출하고, 댓글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서울시 시민제안 등의 플랫폼이 이미 존재하지만, 서울시는 구글 폼/네이버 폼으로 의견을 받는 방식을 채택했다. 서울시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받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가 운영하는 '시민제안' 등 플랫폼이 아니라 네이버/구글 설문 폼을 활용한 의견 제출 방식을 택했다. ⓒ 서울특별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의 미래에 대해 서로 의견을 논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울시가 임의로 시민 의견을 취사선택하여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게다가 설문의 내용 역시 문제적이다. 서울시는 '국가상징공간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다'면서도, 정작 국가상징공간의 의미를 축소했다.
 

'국가상징공간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습니다'라며 국가상징공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서울시 홈페이지 자료 ⓒ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에 대해 '지금의 대한민국 발판을 만든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며, 해외에서도 이런 공간들이 많다고 그 사례를 소개한다. '국가상징'에 대해서는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등을 말 그대로 국가의 공식 징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마치 다른 나라들 역시 호국 보훈을 위한 국가상징공간들을 조성하고 있고, 이에 따라 광화문 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한다면 대형 태극기 등 국가상징에 대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외국에서 하니 한국에서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국가상징공간은 '국가상징' 공간이 아니다
 

서울시가 국가상징공간의 사례로 제시한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광장의 '조국의 제단'. 1885년 착공하였다. ⓒ 이탈리아 관광청

 
그러나 이는 국가상징공간이라는 개념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든 해외 사례의 공간들은 대부분 18~19세기에 형성된 공간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국민국가의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국민 만들기'를 하려는 의도 하에 만들어진 기념 공간들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1971년 박정희 시절 조성된 여의도 5.16 광장과 유사한 공간이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조성한 공간이기에 호국과 보훈을 강조하는 상징물과 조형물을 설치했던 것이다.

수십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의 국가상징공간은 서울시가 암시하는 것처럼 단순히 '국가상징'을 설치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점은 전문가들의 공식적인 의견만 들어봐도 분명하다.

2023년 12월 12일, 대통령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국토교통부와 서울특별시와 함께 '국가상징공간 콘퍼런스'를 주최했다. (컨퍼런스 내용은 유튜브 영상으로 모두 살펴볼 수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서울시, 국토부 등과 함께 국가상징공간 조성을 위한 MOU를 체결한 사업 주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연 콘퍼런스에서는 국가상징공간 조성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살펴보자.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주최한 국가상징공간 컨퍼런스에서 전문가 의견으로 소개된 김세훈 위원의 발언 ⓒ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국가상징공간은) 미래적 도시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국가도시공원으로서 기후위기 대응, 생물종 다양성, 사회통합, 지역 균형 발전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우리나라의 빼어난 매력과 고유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공간, 나라의 품격과 국민의 수준을 드러내는 국가 대표 공간 브랜드가 국가상징공간이며, 여기서 상징은 소수를 위한 권위적 상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과 미래 세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공공공간이다. 공간 조성 과정 자체가 개방적으로 운영되고 민간 참여를 통해 어떻게 이런 공간을 활용하고 어떤 컨텐츠를 만들지 준비해야한다." (김세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국가상징공간 조성의 주체 중 하나인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위원들마저도 국가상징공간이 단순히 '국가상징'이 들어가는 공간이 아닌, '국가의 상징적인 공간'을 의미하고 있음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시민의 참여와 소통으로 공간의 의미 찾아야
 

국가상징공간 콘퍼런스 좌담회 패널로 참석한 김성도 교수 ⓒ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콘퍼런스에 발제나 좌담회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 역시 '국가상징'을 강조하는 서울시의 설명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민의 삶에 직결되는 도시 내 공공 공간과 녹지공간이 각 지역에서 소통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브랜딩 하는 것을 국가상징공간이라 말한다. 황두진 건축가는 국가상징공간에 대해 마을 공동체의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분산형의 마을정원 네트워크를 제시한다.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역시 국가가 특정한 공간에 어떤 상징을 만드는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내에 존재하는 상징적 공간으로서 이를 논의하는 공론장을 마련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국가상징공간'이라는 단어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시민들의 소통과 참여로 만들어지는 공공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국가상징공간 조성 방식은 그 내용도, 과정도 전혀 반대로 가고 있다.

서울시는 국가상징공간의 의미를 '국가상징'이 들어간, 마치 호국과 보훈의 공간인 양 선전하면서 '100미터 태극기'가 자연스러운 조형물인 것처럼 호도한다. 보훈의 의미와 가치를 새기는 공간으로는 이미 현충원이 있다. 광화문 광장의 역사적 의미는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목소리가 경합하는 민주주의의 열린 공간이었다는 점에 있다. 광화문 광장을 국가상징공간으로 만든다면, 그 의미를 만드는 과정 역시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공론장을 구성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시민의 눈 가리면서 목소리를 듣겠다고? 
 

서울시 정보소통광장의 '국가상징공간 관련 시민 및 전문가 의견 수렴 계획' 문서. 제목을 제외한 내용을 모두 비공개해 내용을 살펴볼 수 없다. ⓒ 서울특별시

 
 

서울시 정보소통광장의 '광화문 광장 일대 국가상징공간 조성사업 추진계획' 문서. 제목과 목차를 제외한 내용을 모두 공개하지 않아 살펴볼 수 없다. ⓒ 서울특별시

 
그런데 서울시의 정보공개시스템인 정보소통광장에서 '국가상징공간' 조성과 관련한 문서들을 검색해 보면 모두 다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없는 '부분공개' 문서다.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계획을 밝히는 문서마저도 그 내용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 광장을 만들겠다면서, 광장을 이용해야 할 시민들이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도록 감춘 셈이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국가상징공간이 무엇인지 본질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국가상징공간은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국가 상징물의 전시장이 아니다. 광화문 광장을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하겠다면, 시민들이 보다 더 많이 찾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공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설문조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상징공간 조성 계획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한 것인지, 과거의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공간의 역사적 맥락과 광장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지금처럼 특정한 방향으로 국가상징공간의 의미를 축소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 전반에 대한 투명하고 개방적인 정보공개로 인해 시민들이 충분히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상징공간은 한국 사회의 정체성과 가치를 반영하는 장소다. 그 공간이 단순히 국가의 위엄을 과시하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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