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워싱턴DC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공정' 논쟁의 핵심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정책"에 대한 찬반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DEI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1960년대 민권운동 이후 본격화되었다. 1964년 민권법 제정과 함께 시작된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Affirmative Action)는 DEI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교육과 고용 분야에서 소수자 우대 정책이 확대되면서 역차별 논쟁이 불거졌다. 이에 따라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다양한 주에서 DEI 정책을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대학 입학에서도 마찬가지다. 2003년 미 대법원은 대학 입학에서의 인종 고려를 허용했지만, 2022년 하버드대학교 입학 정책에 대한 소송은 DEI 논쟁을 다시 격화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DEI 정책은 평등과 공정성에 대한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관 충돌을 반영하는 핵심 쟁점으로 자리 잡았다.
DEI 옹호 세력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 미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때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도출된다고 믿는다. 또한, 역사적으로 소외된 그룹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인재를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DEI 지지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단순한 도덕적 의무를 넘어 경제적 이점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다양성이 높은 기업이 더 나은 성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며, 포용적인 사회가 더 강한 경제적 성장과 혁신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DEI 정책은 모든 구성원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미국의 경쟁력과 사회적 결속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해리스는 이 DEI 정책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이에 대응해 트럼프 지지 세력의 DEI 반대 논리는 주로 '역차별'과 '능력주의 훼손'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DEI 정책이 특정 인종이나 성별을 우대함으로써 오히려 불공정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해리스가 부통령에 임명된 것부터가 실력보다는 DEI에 의한 결과라고 공격한다. 또한, 능력이 아닌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기반한 선발이 전반적인 사회 효율성을 저하시킨다고 본다. 하향평준화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더불어 DEI가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위협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인종을 고려하지 않는 실력 위주 접근법을 선호하며,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DEI는 불필요하고 해로운 정책이며 능력주의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바이든과 민주당을 급진적인 좌파세력으로 규정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 DEI 정책을 둘러싼 뿌리 깊은 이념적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DEI 정책을 적극 옹호해 온 카멀라 해리스의 대선 후보 등극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강하다. 물론 해리스-트럼프 대결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이 DEI 논쟁을 한층 격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는 민주당이 활력을 얻고 있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 이후, 해리스는 단 일주일 만에 2억 달러(한화 2550억 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모았고, 17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새롭게 참여했다. 이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3분의 2가량은 처음으로 기부를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거부 정서가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물론 일시적인 효과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인구학적 변화와 최근의 선거 행태 분석들은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해리스가 다양한 유권자층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2018년 장기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45년경 미국에서 비히스패닉계 백인 인구 비율이 50% 미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인구 구성의 변화는 미국 사회의 미래 비전 설계에 있어 다양성 관련 정책이 더욱 중요해질 것임을 시사한다.
과거 선거 사례를 보면, 버락 오바마는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플로리다, 오하이오, 버지니아 등 주요 경합주를 석권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의 승리는 수십 년 만의 민주당 승리였다. 바이든 역시 2020년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의 경합주를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애리조나와 조지아에서의 승리는 민주당이 오랜만에 승리를 한 것이었다.
핵심 원인은 이들 주요 경합주에서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유권자의 투표율과 참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리스의 당선 여부도 주요 경합주에서 민주당 및 DEI 지지 세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번 미국 대선과 DEI 논쟁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미국 대선 DEI 논쟁의 시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