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를 만들 의도는 없다. 다만, 백서는 총선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담는 자료집이다."
22대 총선, 정권 심판론 바람에도 서울 마포구갑 '험지'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 개혁적인 색채가 강했던 '시대전환' 당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그는 이제 보수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개혁의 칼자루'를 쥐었다. 총선 참패 원인을 지목하는 총선백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당내에 파장을 일으킬 '악역'이 될 수밖에 없다.
조 의원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맹탕 백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그는 "총선 패배의 원인이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했다는 것이 빠진다면, 우리 백서의 신뢰도는 바닥을 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걸(백서특위 위원장) 맡으면서 진짜 다시는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라며 "우리 당의 방향을 제시하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선 참패 이후 당내 화두인 당정 관계 재정립 관련해서도 전향적인 목소리를 내놨다. 그는 "수직적 당정 관계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번 총선을 통해 명백해졌다"라며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시대전환 출신' 재선 의원이지만, 기존 당내 인사들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차기 당 대표 후보군 중 하나로도 꼽힌다. 조 의원도 본인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 의원은 "당 대표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당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시대전환 출신'은 역으로 단점이기도 하다. 21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시대전환·기본소득당 등이 연합한 비례정당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국민의힘과 합당해 이번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소신이 아닌 권력에 따라 당적을 옮겼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이에 그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정치는 소신과 권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술이다. 소신이 없으면 정치할 필요가 없는 거고, 또 권력이 없으면 소신을 실천할 힘이 없는 거다. 조정훈의 정치를 한 줄 요약하면 실용 정치다. 제가 정말로 권력만을 따라갔으면 민주당과 합당했어야 했다. 훨씬 쉬웠을 거다. 이런 계산을 놓고 보면 좀 바보 같은 짓을 한 거다."
다음은 일문일답.
"백서로 살생부 만들 의도는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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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패인 헤집어야할 ‘악역' 조정훈 "다신 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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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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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심판 바람 속에서도 마포갑에서 당선됐다. 그 이유를 뭐라고 보시나.
"많은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재명 민주당'을 견제하고 '국민의힘 신입사원'으로서 당을 재건해 보라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상대 후보는 정권 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였다. 저는 여당의 후보로서 마포와 국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제시했다. 시민들께 선명한 두 개의 메뉴를 드렸던 것 같다. 딱 599명 더, 내 삶의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선택을 하신 것 같다."
- 총선 참패 이유를 찾는 백서를 만드는 중책을 맡았다. 선거 패배의 원인이 정권심판론에 있다는 데 동의하나?
"총선 패인이 한 가지만은 아닐 거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총선에서 세 번 연속 졌다. 운이 없어서 진 건 절대 아니다. 여러 이유를 지금 찾고 있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했다는 것이 빠진다면, 우리 백서의 신뢰도는 바닥을 칠 것이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책임론 사이에 당내 이견이 있다. 어떤 의견인가?
"개인적으론 이것에 대한 입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총선 백서TF 위원장이다. 제가 얘기해 버리면, 가이드라인을 드리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다. 우리 국민의힘 구성원 중 총선 패배에 책임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다만, 직책이 높을수록 그 책임이 커진다는 건 당연하다."
- 선거 패배 이후 당내에선 당정 관계 재정립이 화두다.
"사실관계를 떠나서 지난 2년 동안 당정 관계가 수직적으로 비쳤다. 정치는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이 그렇다고 보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수직적 당정관계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번 총선을 통해 명백해졌다. 정부와 여당은 다른 몸이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공동운명체다. 그래서 굳이 표현하자면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왜 수직적 관계로 비쳤을까 생각해 봤을 때, 당이 너무 대통령실의 드라이브를 지원하는 역할로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당이 이제는 앞장서서 민생이든 정치 개혁이든 의제를 던지고 행정부가 수용하는 모습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백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총선 패배에 책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살생부를 만들 의도는 없다. 다만, 백서는 총선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것을 다 담는 자료집이다. 이걸 맡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진짜 다시는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저도 정치생명을 걸고 국민의힘과 합당했는데 당이 점점 쪼그라든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낀다. 경기도 60개 지역구에서 6개를 얻었다. 완전 소수당인 셈이다. 앞으로도 더 질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이대로라면 저도 아무리 지역구 관리를 잘해도 또 질 거다.
그래서 백서를 통해서 개혁안을 만들어 내고 우리 당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악역이지만, 재선 의원으로서, 합당해서 얼마 안 되는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철새' 비판엔 "나는 현실 정치인이지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 정치인 조정훈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개혁적 색채의 시대전환을 창당했고, 민주당과 연합한 뒤 국민의힘과 합당했다. 이른바 '철새'라는 비판도 나온다.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치는 소신과 권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술이다. 소신이 없으면 정치할 필요가 없는 거고, 또 권력이 없으면 소신을 실천할 힘이 없는 거다. 저는 현실 정치로 들어온 현실 정치인이다.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저에겐 권력이라는 수단으로 이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겠다는 희망과 기대가 있는 것이다. 조정훈의 정치를 한 줄 요약하면 실용정치다.
제가 정말로 권력만을 따라갔으면 민주당과 합당했어야 했다. 훨씬 쉬웠을 거다. 민주당과 합당했으면 소신이 아닌 권력을 따라갔다는 비판이 나왔겠나? 아닐 거다. 제가 법사위에서 캐스팅보트였다. 쉽게 재선되는 길을 찾았으면 민주당이 원하는 법안 몇 개 못 이긴 척해주면 제 자리 하나 못 챙겼겠나. 이런 계산을 놓고 보면 좀 바보 같은 짓을 한 거다."
-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당 대표 후보군에 거론되기도 하는데.
"이런 질문을 인터뷰마다 하셔서 살짝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선거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비전을 유권자들하고 나누는 과정이다. 비전이 마음에 들면 그 후보에게 기회를 주시는 거다. 그래서 저는 이 결정하기 전에 당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고 있다. 특히 당직자분들 만나서 많은 얘기 나누고 있다. 저는 항상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뭘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당 대표를 하겠다 말겠다 하기 전에 당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거다."
- 당 대표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 안 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시점에선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가 아니라 하게 되면 내가 뭘 해야 되는가를 생각하고 있다."
- 만약 당 대표직을 맡게 된다면 뭘 하고 싶나?
"당 대표는 '나를 따르라'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이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 당의 체질 개선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흐트러진 집토끼, 우리 핵심 지지층에 신뢰를 얻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한 결론이다. 우리 핵심 지지층이 두 표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니까 뭘 해서라도 확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선거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이 확장을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 대표는 원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안 보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
"야당 비판으론 득점 못 해... 희망의 정치 하고 싶어"
- 현안 얘기를 좀 해보자. 오늘(9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있었다. 총평을 해본다면?
"이제 좀 '대통령답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걸 다 속속들이 얘기하지는 않으셨을 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리고 총선 패배 원인에 대해서도 본인을 포함시키셨다. 사실 그것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본다."
-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건 제3자 입장에서 봐도 합리적이다. 제가 시대전환에 남아 있어도 똑같은 입장이었을 것 같다. 채 해병의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 규명과 관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라는 원칙은 대한민국 국민과 정치인 모두 동의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무슨 방법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이 다른 것이다.
특검을 하게 되면 즉시 (공수처) 수사는 중단된다. 모든 자료를 특검에 이첩해야 한다. 그리고 특검 설치하고 이러는 데 몇 달이 걸린다. 그럼 가을이 된다. 그럴 바에, 여야가 합의해서 공수처 인원과 예산이 부족하면, 예비비 쓰고, 각 부처에서 파견을 해서라도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수사 결론을 내자는 거다. 화끈하게 '특검하자' 그러면 다음 날 보고서 나오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 오히려 특검을 했을 때 수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이지 않나. 그리고 민주당만 특검을 임명하면 그럼 국민의힘이 그 보고서를 받을 게 얼마나 부담되겠나."
- 이른바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두고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보나.
"고가 명품백 수수와 관련된 건 이원석 검찰총장이 속도를 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처벌 조항 있는 건 아니다. 부적절한 거였지만,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기소 대상이 아니다.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 책임의 논쟁이다. 그건 특검 대상이 아닌 것이다. 특검은 수단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과가 부족하다? 받아들일 수 있다. 김건희 여사가 직접 사과해라?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재발 방지책 만들어라? 이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선 우리 정부도 신중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통령과 대면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나.
"야당은 여당을 비판할 수 있다. 그게 업이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수권하려고 노력하는 건 맞는다고 본다. 하지만 여당의 업은 야당 비판이 아니다. 여당이 야당 비판한다고 득점하겠나. 저는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당의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국정 운영의 능력이다.
제가 대통령을 뵈면 지금까지 실점 너무 많이 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다 보니까 실점을 막는 수비만 우리가 열심히 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 특검'하자고 하면, 김정숙 여사 특검도 하자거나 그런 특검 담론으로 가는 순간 우리는 그냥 방어만 해야 한다. 우리는 집권당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민주당은 계속 때릴 테니까, 우리는 의제를 던지고 나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22대 국회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은?
"저는 희망의 정치를 해보고 싶다. 초선 땐 1호 법안 고민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국민들이 정치를 그냥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보고 계신 것 같다. 왜 그럴까. 정치가 국민들의 삶을 바꾼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시민이 이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누군가가 나빠서 쟤는 절대로 당선시키면 안 되니까 반대를 뽑아야지가 아니라 이 후보, 이 정당, 이 정치 세력은 대한민국을 앞으로 나가게 만들 희망이 있으니까 뽑아줘야겠다는 희망의 정치를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