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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22일, 서울 4호선 종착역인 오이도 역에서 수직형 리프트가 추락하여 장애인 노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는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이 땅의 장애인의 이동권의 현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건이었고, 이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쟁취를 위한 힘찬 투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인 2002년 1월 22일,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는 장애인의 이동에 있어서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에 헌법소원과 진정서를 각각 제출하고, 혜화로터리에서 오이도역수직리프트추락참사 1주년 기자회견과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결의대회'를, 광화문에서 '제 10차 장애인도버스를탑시다'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날 이동권연대 소속 휠체어장애인들은 목에 종이로 된 칼을 쓰고 '근조 버스'라고 쓰인 조화를 설치했으며, 종이로 만든 일반 버스 모형에 대한 화형식을 진행하는가 하면, 대학생 2명이 이순신 동상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고, 광화문 사거리를 휠체어로 점거하기도 하였다.

이는 무관심, 무책임한 정부에 의해 '사회감옥'에 갇힌 장애인들의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부는 이들의 이동권 요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경찰을 동원 이들의 직접행동을 폭력으로 진압하기에만 급급했다.

오이도역 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이동권연대를 포함한 진보적 장애운동단체들의 지난 1년은 그간의 장애인 인권투쟁에 있어 이례적으로 치열한 한해였다.

지하철 선로 및 버스 점거, 시청 앞 노숙 및 서울역 천막농성, 백만인 서명운동, 10차에 걸친 버스타기 투쟁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장애인들의 이동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고, 저상버스의 시범운행 등을 통해 그 대안 또한 제시하였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 스스로의 자기 권리에 대한 각성은 물론, 이동권을 비롯한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 부족, 열악한 도로 사정 등의 낡고 궁색한 변명과 각 관련부처들간의 책임떠넘기기로 일관하며, 줄곧 기다림만을 강요해왔다.

지난 이동권연대의 활동은 그간 여타 사회문제에 가리워져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던 장애인의 문제, 이동권의 문제를 시민사회운동진영에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담론들로 이끌어내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진보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2001년 올해의 인물에 이동권연대의 대표인 박경석씨(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장)가 선정되는가 하면, 시민단체들이 뽑은 올해의 10대 뉴스에 이동권투쟁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물론 경찰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동권 투쟁에 있어 장애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애인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을지라도 지하철 선로나 도로, 버스를 점거하는 등의 '시민의' 불편을 감수하고 그러한 행위들을 용인할 수는 없다, 즉 장애인들의 그러한 행동은 일반시민들에 대한 폭력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이순신 동상 점거자들을 비롯한 주동자급은 불구속 입건, 나머지는 집회에 처음 참석해보는 대학 1학년생들도 이례적으로 훈방 없이 전원 즉결심판처리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바로 장애인들도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잠시 불편한 것이겠지만, 장애인들은 평생 그러한 불편과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며 살아야 합니다." 집회를 할 때마다 장애인들이 외치는 구호이다.

장애인들도 이 사회의 동등한 일원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들이 집회 때 가하는 비장애인 시민들에 대한 폭력(?)과 장애인들에게 평생 가해지는 사회적인 폭력 중 어느 것이 더욱 심각하고 불합리한 폭력인지...

한편, 몇몇 장애인단체와 장애인 관련 학생단체에서는 '문제가 너무 이동권에 치우쳐 지체장애인들의 목소리에만 힘이 실린다'는 비판도 있어, 이를 시·청각 등 정보장애인들의 요구를 포함한 '접근권'차원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접근권 차원으로의 확대는 이동권 투쟁 1년이 지나는 지금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다. 어쩌면 이것은 현재 진행중인 투쟁요구를 확장시켜 논점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 문제에 있어 어느 유형의 장애인들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법은 없다. 이동권 투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있는 지금, 그와 같은 변화는 이동권연대가 자칫 일부 장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오해의 여지를 없애고, 사회적으로 보다 넓은 지지기반을 형성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미국과 같은 자본력을 가진 나라의 대중교통권 확보투쟁이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의 투쟁은 그보다 두배, 세배가 더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권, 나아가 접근권은 인간으로서, 현대사회를 함께 사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에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투쟁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함께 하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기를 바라며,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격려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월간소식지 '자유공간'의 객원기자로 활동중이며, 장애인들의 투쟁현장에서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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