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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더 이상 안 하고 싶네요."

같은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는 강사 한 분이 기분 좋지 않은 표정으로 멋쩍게 웃으면서 건넨 말이다. 오전에 있었던 수업이 이번 학기 두 번째 시간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첫 시간 수업에서 강의에 대한 열정으로 학생들이 준비해야 할 부분들을 말하다보니, 학생들로서는 아무래도 빡빡한 수업으로 인식을 했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35명이 수강신청을 했는데, 20명이 수강정정을 해서 빠져나가고 없더라는 것이다.

30명이 넘어야 수업이 개설되는데, 그야말로 폐강위기에 몰린 것이다. 다행이 16명이 다시 수강신청을 해서 겨우 폐강의 위기는 넘겼지만, 그야말로 의욕도 열정도 자존심과 함께 다 구겨져 버린 것이다.

작년부터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선생님은 강의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열정도 열정이지만 그에 따르는 탁월한 강의능력으로 인해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다. 수업 첫 시간 그러한 열정은 학생들에게 수업을 위한 여러 주문으로 드러났고, 그것은 자신의 실력과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수업을 폐강의 위기로 몰고간 것이다.

개강을 하면서, 강사들에게 가장 신경 거슬리는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폐강에 대한 공포이다. 어떻게 해서 몇 강좌 받아 놓아도 학교에서 정한 인원수를 채우지 못하면 그대로 폐강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주로 개강 첫 주에서 두 번째 주 사이에 수강정정 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첫 시간 수업을 잘못하면 그대로 폐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양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의 수업 성립 인원수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30명에서 40명 선이다. 이른바 한 강좌에 대한 '손익분기점'이 그 정도 선인 것이다. 이보다 적은 인원으로 강좌를 개설하게 되면 학교로서는 그 강의에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학교로서는 '폐강'결정을 단행하게 된다. 폐강 결정에 수업내용이나 중요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기에 한몫 더 하는 것은 학생들의 수업 선택 양상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은 한 마디로 '쉽고 재미있는 수업'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어렵고 재미없는 이론들을 가능한 쉽고 재미있게 풀어달라는 요구라면, 이것은 당연한 요구이다. 그리고 수업을 하는 교수라면 이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업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와 '준비'가 필수적이다. 스스로 참여하지 않는 수업이라면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도 쉬울 리 없고, 쉽지 않은 이상 그것이 재미있을 수는 더 더욱 없다.

그런데 이러한 참여와 준비를 말하게 되면, 이것은 빡빡한 수업으로 인식되어 순식간에 다른 과목으로 수강정정을 해 버린다. 그냥 편안하게 풀어놓은 상태에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선생님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그맨'이 아닌 '전문가'에게 수업을 맡기는 이유가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전공수업이 아닌 교양수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전공수업이야 어쩔 수 없지만, 교양수업까지 그렇게 힘들게 듣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부분이 교양수업을 담당하는 강사들로서는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이렇게 되면서 대학에서 교양수업은 전체적으로 가벼워지는 느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폐강의 위기를 몇 번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첫 시간은 나름대로 '달콤한 말'을 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한 학기 원래 목표했던 지식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올가미로 작용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교양'수준의 강의로 끝나는 것이다.

학교경영에 따른 이유와 무겁고 딱딱한 것을 싫어하는 학생들로 인해 매 학기 강사들은 폐강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강의가 수입의 전부인 대부분의 강사들에게 있어서 폐강은 그대로 한학기 자신의 경제적 여건을 좌우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개강 후 첫 시간 강의에 들어가는 강사들은 종종 자신의 학자적 자존심과 교수로서의 열정을 건물 복도에 놓아둘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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