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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7월 13일 수요일, '풀민'님은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중이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삼아 용산전자상가에서 개포동 집까지 한강둔치의 자전거도로를 이용해서 출퇴근한 지 벌써 4개월.

원효대교 밑으로 자전거를 끌고 내려와 한강 북쪽의 강변도로에 올랐지요. 저녁 무렵의 한강변은 사람들이 북적됩니다. 이럴 때 한강변 도로는 보행자, 달리는 사람,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들이 한데 엉켜서 자칫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풀민님은 '보행자 우선의 원칙'을 떠올렸습니다. '약자가 우선이다. 강하고 빠른 교통수단이 약하고 느린 사람 혹은 교통수단을 배려하고 보호해야 한다. 느리다고, 내 앞을 가로막는다고 함부로 위협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산보 나온 보행자 뒤를 살살 좇아 다니며 겨우겨우 틈새로 지나치면서 잠수교까지 왔습니다.

잠수교를 건너기 위하여 한강북단 자전거 도로 입구로 진입하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11톤짜리 화물차가 도로를 직각으로 교각까지 완전히 길을 차단하여 길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길을 지나는 방법은 교각과 화물차 사이의 틈새를 자전거를 끌고 경계석을 올라가서 지나가는 방법과 교각 바깥쪽의 잠수교 도로로 우회해서 지나가는 방법,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삼식이 삼순이를 보기 위하여 지금 빨리 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자전거교통의 생활화하려는 '발바리'라 자부하는 터, 운전자를 찾았습니다. (발바리는 '두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의 줄임말로 자전거교통의 대중화를 위한 자전거인의 모임입니다.)

차 안도 살펴보고, 주위를 둘러봐도 운전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풀민님은 112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곳 잠수교 북단 자전거도로 위에 대형 화물차 불법주차로 인하여 자전거 통행에 방해가 되고 있고, 통행하는데 위험한 상황이니 빨리 조치바랍니다."

그리고 혹 경찰차가 안 나타날까봐, 한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지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경찰을 기다리는데, 화물차 뒤쪽 언덕 위에서 포클레인을 발견하였습니다. 혹시 해서 다가가 "아저씨, 이 화물차 주인 아세요?"하고 묻자, 소음 때문에 잘 안 들리는지, 포클레인 기사는 창문만 빼꼼이 열고 뭐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포클레인의 움직임을 봐서는 포클레인을 화물차 뒤에 실을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 일단 차를 좀 빼시지요. 자전거 통행에 문제가 있고 좀 위험한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그 기사양반은 들은 체, 만 체 눈길 한번 안주고 자기 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풀민님은 좀 화가 났습니다 "아저씨, 지금 차 안 빼시면 경찰 부릅니다. 신고합니다!"

그러자 그 기사양반은 눈 한번 치켜뜨더니 그래도 여전히 자기 일만 합니다. 그 순간에도 이미 10여대의 자전거가 도로 밖으로 우회해서 지나가거나, 화물차 틈새로 겨우 빠져 나가다 앞 화물차 옆 거울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 곤란을 겪고 있었지요.

드디어, 자기 일을 다 끝낸 기사양반이 풀민님에게 다가와서 코앞에서 삿대질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야! 시 X 놈아, 어디 신고 한번 해봐라. 이 X 같은 놈아!"

이런 황당한 경우가 ~ , 하도 어이가 없어 풀민님은 아무 대응도 못하고 눈만 껌뻑껌뻑 거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 순간에도 반팔 러닝 차림의 그 운전기사는 눈앞 50CM까지 접근하여 주먹을 불끈 치켜들며 위협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풀민님의 머릿속이 잠깐 복잡해졌습니다. '내가 그래도 중3이나 되는 아들놈이 있는 가장인데, 이런 수모를 당하고 참아야 되나. 그냥 뒤돌려 차기 필살기로 아작을 내고 갯값을 물고 말까. 아니면 살수절공의 신랄한 목치기로 일격을 가한 뒤, 자전거 타고 잽싸게 내빼 버릴까.'

그러나 주위에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면서 이 폭력배 같은 운전기사를 만류하면서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자, 기사는 움찔하며 황급하게 화물차에 올라타고 차를 빼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차가 움직이자, 모두들 다시 제 갈 길들을 가고, 풀민님은 무정하게도 올 생각을 않고 있는 경찰들을 기다리며 여전히 서 있고.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그 기사양반 다시 차를 정차시키더니 차에서 내려서 다시 다가오는 겁니다. 그리곤 다시 "야 이 시 X 놈아, 이 X 같은 X X 야!"라며 쌍욕을 내뱉는 겁니다.

풀민님은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다시 112를 눌렀습니다.

"여보세요. 신고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 경찰차가 안 옵니까! 지금 난 신고했다고 맞아죽게 생겼네요. 이 상황 경찰이 책임질 겁니까? 지금 이 말 녹취되고 있죠?" 라고 큰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운전기사는 다가오다 말고, 쭈뼛쭈뼛 다시 돌아가 차에 올랐습니다. 곧이어 불과 몇 십 초만에 경찰차가 나타났습니다.

경찰차에서 내린 두 명의 경찰관은 순식간에 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였습니다. 먼저 풀민님한테 경위를 묻고, 화물차 기사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경찰관은 "에이, 별거 아닌 일로 그냥 두 분 서로 사과하고 돌아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봐요. 세상 그렇게 뻣뻣하게 살지 말아요. 그리고 이 장비는 여기 시민들을 위하여 공사를 하는 장비이고 난 그것을 운반하기 위하여 잠시 주차한 것뿐인데, 그걸 양해 못하나?"라며 오히려 풀민님이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순간, 풀민님은 갑자기 열이 뻗었습니다. 적당하게 묵과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잠깐, 분명히 합시다. 경찰관님! 전 먼저 사과할 의사가 전혀 없고 사과할 일도 없습니다. 첫째, 자전거도 도로 교통법상 교통수단으로 인정이 된다면 분명 이곳 자전거 도로도 분명 도로이고, 이곳에 불법 주차를 한 차량이 있으면 분명 불법주차 딱지를 떼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정당한 시민의 권리로 통행이 불편하여 경찰에 신고하였는데 이에 불만을 품고 폭언과 위협을 가한 사람에게는 이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셋째, 공무도 아닌 개인적인 이득을 위한 일로 도로를 점유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모욕을 가한 이 사람을 정식으로 현장에서 고발조치를 하니 이에 따른 조서를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경찰관들과 운전기사 양반은 매우 당황해 했습니다. 갑자기 그 기사양반이 다가와 풀민님의 손을 잡더니 그만 사과하자고 합니다. 잠시 당황한 경찰관들은 서로 마주보고 눈빛을 교환하더니, 운전기사에게 면허증 제시를 요구했습니다.

풀민님은 슬그머니 운전사의 손을 밀치고 뒤로 빠져서 경찰관과 운전기사의 실랑이를 지켜보았지요. "응, 나야. 좀 늦겠네. 삼식이 삼순이 녹화 좀 해 놔라. 응, 알았어." 느긋하게 집으로 전화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운전기사는 연신 경찰관의 소매 끝을 잡고, 경찰관은 거듭 면허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옆에서 지켜보던 풀민님은 염장성 발언을 한마디 더 내뱉었습니다. "경찰관 아저씨, 일단 조서 작성을 위해서라도 경찰서로 갑시다!"

그러자 그 기사 양반 다시 다가와서 사정합니다. "내 욕한 것 사과하리다. 나도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데, 너무 젊은 사람이 빡빡하게 구는 것이 화가 나서 좀 심하게 했소."

아까와의 기세와는 달리 매우 애처롭게 사정을 하는 것에 풀민님은, 솔직히 좀 통쾌도 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그저 즐길 순 없는 노릇이지요.

"아저씨, 제 큰놈이 중3입니다. 저도 그리 적지 않은 나이인데, 이런 일로 이런 쌍욕을 먹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전 단지 자전거가 일반도로도 아닌 자전거도로에서조차 자동차 때문에 제대로 못 다니는 것에 대하여 화가 났고,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전거도 당당한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자동차를 치워달라고 요구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조금 전에 경찰관들도 별 거 아니라고 하신 상황만 봐도, 일반 교통경찰들이 생각하는 자전거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어떠하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습니까. 그냥 가십시다. 다음부터는 자전거가 다니는 길도 엄연한 도로라는 걸 아시고, 자전거도 하나의 교통수단임을 알고 함부로 하시지 말길 바랍니다."

풀민님과 화물차 운전기사 간에 있었던 상황은 그런 식으로 종료되었습니다.

풀민님은 자전거를 타고 잠수교를 건너오며, '괜한 짓을 했나? 배고픈데 시간만 뺏기고……. 아마 그들은 별 우스운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한 켠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풀민님은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자전거가 좋다. 좀 더 안전하게, 편안하게 자전거를 타고 싶다. 결코 자동차와 다투는 그런 상황이 되길 원치 않는다. 좁은 도로, 서로 공유하고 안전하게, 서로를 인정하며 같이 다니는 걸 원한다. 하지만 아직은 그건 희망사항인 것 같다. 많은 자동차들은 아직도 자전거를 귀찮은 존재로만, 그냥 레저용의 도구로만 여긴다. 그들에게 자전거도 훌륭한 교통수단이며 당당한 도로 위에서의 주체라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

7월 16일 토요일 오후, 자동차로 넘쳐나는 종로거리에 200여대의 자전거가 떼를 지어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풀민님도 이 자전거교통의 축제에 참가하였지요.

▲ 2005년 7월 떼거리잔차질 시내주행
ⓒ 발바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매월 셋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자전거교통축제, '발바리 떼거리잔차질'에 최초참가한 풀민님이 직접 작성하신 사연을 재편집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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