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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넘게 끌어온 정부 대책이 발표된 지 며칠이 지났다.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많은 말들과 예측이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다. 서민들을 위한 부동산 안정, 참 좋은 말이다. 그래서인지 역대 대통령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다. 그 얘기는 곧 아무도 해내지 못했다는 말도 될 것이다.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지만…. 요즘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대통령 후보 당시 공약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아파트 50% 세일~

그때도 지금처럼 많이 남았다는 얘기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불가능한 공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정부가 바라는(실제로 바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대로 될지,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 이 말은 너무 무책임한 말이다.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현실감 없는 치명적인 오류일 것이고, 아닌 거 알면서 말로만 그런 거라면, 국민을 너무 쉽게 본 것인데, 둘 다 마땅치는 않다. 왜? 극단적으로 말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정책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법을 합리적으로 뜯어 고쳐야 할 사람들은 어떤가? 과연 그런 의지가 있을까? 그 전에,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서민이 아니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갖가지 구실을 만들어 지킬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그들은 집값이 안정되거나 이익에 대한 분배나 환수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미흡하다는 대책인데, 국회를 거치면 과연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된다.

자, 그렇다면 서민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대다수 국민들, 평생 벌어야 집 못산다고 한다. 박탈감, 상실감, 맞는 말이다. 좀 더 강력한 대책으로 부동산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언제까지? 내가 살 때까지? 하지만 현실은 가진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 못 가진 사람들조차 부동산을 재테크의 거의 유일한 도구로 생각한다.

유독 부동산을 사랑하는 대한국민들… 부동산이 침체되면, 마치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듯이(사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말한다. 이런 기대에 부응해서라도, 부동산은 안정될 수 없다. 몇 천만 원도 아닌 몇 억 원짜리 아파트를 딸랑 모델 하우스 하나 보고, 은행융자 얻어서 입주도 하기 전에 계약하고 중도금 꼬박꼬박 건설사에 건설자금 대어주는 것이 현실이다.

작은 전자제품 하나에도 인터넷 뒤져서 성능이나 가격 비교하고 사는 사람들이 왜 유독 집에는 이렇게 너그러운 걸까? 줄을 서서 계약금 주고 제발 당첨만 되길 바라는 걸까? 소비자의 권리도 다 포기한 채, 배짱부리며 내세우는 건설사의 분양가에 한마디 못하고, 아직 땅파기도 하지 않은 아파트에 비장한 각오로 달려드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이유는 딱 하나다. 남으니까, 돈이 되니까,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잘만하면 일년 내내 벌어야 할 돈, 아니 그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 해도 남으니까. 뭐 안 오르면 내가 살지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누가 이런 투자를 마다하겠는가. 이것이 부동산을 잡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다.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쉬운 땅 집고 헤엄치는 사업이 또 있을까. 원가를 밝히지 않아도 되고, 분양가는 계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그 까이 꺼 대~충' 불러놓으면 군말 없이 몰려드니 재벌 기업 중에 건설사를 두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정책에 영향력을 주는 재벌들이 자기들 밥그릇을 뺏으려 하는 대책을 가만히 앉아 지켜만 보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사랑했던 시간만큼이 지나야 했던가. 웬 사랑타령?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부동산으로 재미 보고 신나게 한판 벌였던 사람들이 이 땅을 유린했던 시간만큼이 지나야 제대로 잡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그걸 하루아침에 몇 가지 대책으로 잡아보겠다는 건 오만일까, 무지일까. 언 발에 오줌을 눠 봤자, 결과는 뻔하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소위 재테크의 달인들, 사회적으로 선망이 되고 있다. 물론 의도된 투기 목적이 아니고 순수한 동기의 투자로 시작했고, 열심히 다리품 팔고 공부한 결과라 해도 아마추어는 아니지 않은가.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면 이들이 받는 대접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부동산도 훌륭한 재테크의 수단이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상적인 투자는 바람직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투자인가.

이처럼 지금 우리나라는 투자와 투기의 구분조차 지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그들이 쏟아낸 책들로 서점가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나 역시 그 언저리를 맴돌면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부동산 이익은 누군가의 프리미엄 아니든가.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 경쟁력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 국민 모두가 그 일에 목을 매고 있다. 언론은 전 국토가 투기장이라며 아주 신이 났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라는 듯이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들은 하다못해 경제 일간지라도 뒤적여봐야 왕따 분위기를 조금은 면할 수 있다.

부동산을 안정시키려면 적어도 희망을 주지 말아야 한다. 사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런 희망은 주어서는 안 된다. 공급을 늘려, 미니 신도시를 세워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저거 사면 돈 되겠다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 희망은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번 대책으로 안겨줄 세 부담이 미안한 듯 그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만의 잔치 뒤편에는 서민들이 있다.

부자들이 존경 받지 못하고 그들이 축적한 부를 사회로 환원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어쩌면 부동산에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터전, 보금자리라는 집의 원래 뜻이 더 이상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땅값이면 캐나다를 6번 살 수 있다는 웃지 못할 기사가 생각난다. 정부와 재벌과 국민의 하나 되어 만든 작품이다.

왜 국민들을 끌어들였는지 새삼 따지고 싶진 않다. 이제 판을 정리하고 제자리로 돌려놓길 바란다.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곳에서 희망을 볼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차라리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나만 아는 일이면 좋겠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아는데도 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대는 걸지 못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물 흐르듯 조금씩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춤을 추는 정책이 아니라, 폭탄선언 같은 대책이 아니라, 10년, 20년 후를 내다보아야 할 것이다. 두 달이 아니라 2년이 걸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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