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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경
ⓒ 조병경
ⓒ 조병경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이뤄졌던 길거리 응원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고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한 몫 했다. 그 당시 외신들을 우리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고 그 길거리 응원은 4년이 지난 지금, 독일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 조병경
한국과 토고전이 벌어졌던 13일, 나는 2002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일찍부터 친구를 보내 자리를 잡게 했다. 오후 6시, 친구가 잡아놓은 자리로 가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 자리로 가면서 ‘이게 아닌데’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서울시청 광장으로 가는 길목엔 수많은 잡상인과 응원 인파가 뒤섞여 있어 가다 서다를 반복 해야만 했다. 고성의 호객 소리쯤은 아량으로 넘겨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렵게 다가선 시청 광장 앞에선 안전 요원들과 시민의 몸싸움이 한창이었다.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아 들어갈 수 없다는 안전 요원과 시민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옆으로 돌아 진입에 성공했지만 정말 험난한 길이 남아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자리까지 가기엔 너무 험난했다. 안전을 위한 이동 통로가 없었다. 누구하나 긴급상황이 발생하여도 속수무책일 것 같았다.

안전요원들의 말투는 권위적이었다. 아무에게나 반말과 고성으로 일관 하였다. 진입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친구에게 나오라고 말하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핸드폰조차 먹통이었다. 최악이었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어깨를 짚고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비집고 들어갔다. 15m 정도를 가는데 30분이 넘었다. 잠시 맡아놓은 자리에서 회의를 하였다. 여기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다는데 중지를 모아 빠져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다시 빠져나오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일행뿐만이 아니고 많은 인파들이 빠져 나오고 있었지만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옆으로 비집고 나가보니 나가는 출구가 막혀있다. 행사 주관사의 로고나 광고를 절대 걸지 않겠다고 한 행사에 안전통로도 없고 빠져나가는 길목에 주관사를 상징할 만한 시설물이 길을 막고 있었다.

그 시설물을 지키는(?) 안전요원이 대여섯 명이나 됐다. 나가기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돌아서 가라고만 했다. 기가 막혔다. 오늘 무슨 일이 나도 크게 나겠다 싶었다. 월담 하듯이 광고시설물을 넘어 빠져 나오면서 잔디광장의 수많은 인파를 돌아다보았다. 불쌍(?)하다.

일행을 수습하여 프레스센터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이구동성 한마디씩 했다. 골 들어가서 난리나면 큰 사고 날 것 같다고. 경기가 시작 되었다. 전광판의 선수 동작 하나하나에 숨죽이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실점, 후반 동점골, 역전골. 그렇게 승리가 확정되고 경기종료 휘슬과 함께 광란의 밤이 시작되었다.

쓰레기장으로변한 도심 응원 현장
쓰레기장으로변한 도심 응원 현장 ⓒ 조병경
쓰레기장으로 변한 도심 거리
쓰레기장으로 변한 도심 거리 ⓒ 조병경
2002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지고온 쓰레기를 집어 들고 바닥에 먼지하나까지도 남기지 않던 그때의 시민들은 온데간데없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도로 뛰어들었다. 길거리와 응원하던 광장은 대규모 쓰레기장으로 순식간에 변하였다.

도로를 점령한 시민들과 차량에 올라간 시민들.
도로를 점령한 시민들과 차량에 올라간 시민들. ⓒ 조병경
종각역 로터리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차도는 차와 사람이 엉겨있었고, 인파가 지나간 거리는 태풍이 지나간 것과 흡사 했다.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과 창문만 살짝 내리고 행선지를 묻는 택시들. 따블을 외치는 사람 앞에서만 잠시 섰다. 몇 마디의 대화를 한 후 사람들을 차에 태우는 택시들. 과연 2006년의 대한민국 도심 한복판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반듯하던 2002년의 시민들. 게임의 승리로 인해 얻은 기쁨보다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다. 무었을 잃었는지의 답을 모른 채 그렇게 토고전 승리의 날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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