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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장애인 송영희씨가 시각장애인용 해설 영화를 보기 전에 무선 해설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현재,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영관, 작품도 부족할 뿐더러 해설 기계 역시 열악한 실정이다.
ⓒ 최훈길
"시각장애인용 해설 영화? 거의 본 적 없습니다. 사실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죠."

시각장애인 박명수(31)씨의 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시각 장애인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상영관조차 찾기 힘들고 음성 해설이 된 영화는 거의 없다. 있어도 한창 철 지난 영화들뿐이다. 그렇다고 사회가 이런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대다수 시각장애인들은 불편하지만 그냥 묵묵히 참고 지내고 있다.

지난 2일까지 열린 인디다큐페스티발 행사 중 대학생들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시각장애인 해설 영화 <우리들은 정의파다>를 봤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운 심정을 들어보았다. 시각장애인들은 대학생들에게 막혔던 목구멍이 열리듯 그동안 답답했던 것들을 한없이 쏟아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영화가 너무 많다"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못 보는 이유는 접근성 때문이죠. 오늘도 종각역에서 서울아트시네마까지 같이 왔잖아요. 혼자서는 오기는 힘들죠. 또한 해설 영화 찾기도 힘들어요. 오늘과 같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이나 예전의 장애인 영화제 같은 행사 때만 해설영화가 나오잖아요"

시각장애인 박명수씨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영화가 너무 많다"며 하소연을 했다. 특히, 외국 영화의 경우에는 화면 해설 없이는 더욱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박씨는 보통 "극장에 친구와 함께 가면 친구가 귀에다 대고 영화 설명을 해준다"고 말했다. 그런데 외국 영화이면서 액션이나 공포 장르일 경우에는 영화를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영화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은 시각장애인 송영희(35)씨도 마찬가지였다. 극장에서 시각 장애인용 해설 영화를 처음 본 그는 예전에 본 시각장애인 해설 연극은 "무대에서 마이크로 바로 해설을 해줘서 좋았다"지만 "오늘 본 영화는 무선이라 그런지 잡음도 많고, 해설과 대사가 겹쳐 들렸다"라고 말하며 불평을 토로했다.

현재로선 해결책 없어 답답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주체가 민간이 아닌가. 그러니까 정부에서 민간에게 사회적 약자을 위한 강제 규정을 만들 수도 없지 않은가"

시각 장애인들은 열악한 현실에 대해 현재로선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오히려 박씨는 "문제 있다고 따지면 그나마 이것(시각장애인용 해설 영화) 조차 안 나올 수 있다"며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그가 터득한 요령은 화면 나올 때는 시각장애인용 해설기계를 켜고 대사가 나올 때는 끄면서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해설기계가 오히려 시각장애인을 더욱 힘들게 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었다.

시각장애인용 해설영화를 처음 보러온 송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정석을 제안했다.

"극장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좌석이 있었으면 해요. 그 좌석에는 유선으로 된 영화 해설기계를 설치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적어도 오늘처럼 음질이 안 좋지는 않을거고 영화 보기도 편할 것 같네요"

"눈 가린 상태에서 영화 보는 경험 해보세요"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즐기는데 필요한 시설, 작품 등 부족한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좌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들이 극장을 골라갈 수 있는 선택권 역시 없었다.

봉사활동을 온 대학생 구본석(성균관대 중문학)씨는 "미리 홍보라도 많이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설영화였는데 시각장애인은 우리랑 같이 온 두 분뿐이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분명 시각 장애인을 배려하는 영화 정책이 시급했다. 이에 대해 시각장애인 송씨는 우선 '직접 장애를 체험해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주문했다. 어쩌면 '어려울수록 쉬운 곳에 답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우선 뭐라고 말하기 전에 눈 가리고 영화부터 보세요. 눈을 가린 상태에서 한 번이라도 영화를 보면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해본다면 진정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가 나올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집밖으로 마음 놓고 나올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시각 장애인 봉사하러 갔다 오히려 배우고 오다

▲ 시각장애인 박명수(왼쪽)씨와 송영희씨. 대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술자리를 갖았다.

봉사활동을 했던 대학생들이 시각장애인과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생전 처음. 김민지 (성균관대 영문학) 학생은 "뭔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하게 되고 굉장히 망설여졌다"고 말했다.

그들 모두 뭔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는 투철한 봉사정신을 가지고 갔지만 결과는 오히려 봉사나 사회 복지에 대해 배우고 왔다는데 입을 모았다. 나사렛대 사회복지학을 졸업한 박명수씨는 대학생들이 봉사 활동을 하러 오면 오히려 '봉사'에 너무 집착하는 문제를 꼬집었다.

"장애인과 친해진다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거든요. 냉정하게 얘기하면 하루 날 잡아서 함께 놀고, 시간 보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또한 대부분 대학에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장애인 복지 정책을 평가하지만 정작 시각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정책은 이와 달랐다. 박씨는 전동 휠체어를 주는 것과 같은 겉으로 된 정책을 비판했다.

"저희는 대학이 우리를 보는 인식을 평가하죠. 시설만 10억 넘게 들이면 뭐합니까. 중요한 것은 장애인 학생이 어떻게 배우는지 그리고 졸업 후에 어떻게 살아갈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학교에 시험을 보러갈 경우, 수화 통역, 점자 문제집, 점자정보단말기를 제공하는 배려를 해주는 대학이 몇 군데나 있나요. "

세종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 송영희씨 역시 대학이 시각장애인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정책을 주문했다.

"제가 대학교에서 문자 통역 일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청각 장애인이 없는데도, 실시간으로 공지사항이 전광판에 문자로 통역되어 나가는 거에요. 제가 궁금해서 학교 측에 물어보니까 '학내에 청각장애인이 지나가다가 혹시라도 볼까해서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 듣고 감동 받았죠"

만나는 내내 그들은 영화를 같이 본 대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집에만 있으려고 하고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집밖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과 사람들의 인식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대학이나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 최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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