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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캠프2로 향하던 안치영 대원은 비너스 허리구간을 오르다 배낭을 확보지점에 묶고 잠시 쉬었다. 아일랜드피크봉 뒤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간단히 허기를 채웠다. 앞으로 무사히 정상등반을 마치고 이 구간으로 하강하길 기도했다.

대원들은 자신의 종교를 초월해 등반 출발과 도착시에는 베이스캠프 라마교 불탑에 매일 간절히 기도를 한다. 등반중 사고는 가족에게 평생 비극으로 남기에 목숨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

▲ 캠프2에서 바라본 아일랜드피크봉과 아마다블람 봉으로 이어지는 히말라야 산맥의 파노라마.
ⓒ 한국산악재단
날씨는 구름이 많이 끼긴 했지만 바람은 그렇게 심하지 않다. 강풍은 원치 않지만 웬만큼 바람이 불어주지 않으니깐 언제 강풍이 갑자기 불지 몰라 오히려 두려운 생각이 든다.

아마다블람 봉을 바라보며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차로 속을 데우고 안치영 대원이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안치영 대원과, 강기석 대원 그리고 셀파 파상보티, 이 세 명의 대원이 각자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격을 두고 속도를 맞추어 올랐다. 서로의 모습을 봐주며 격려의 손을 들어주고 서로 마음속으로나마 행운을 외쳤다.

여기서 다시 80도 정도 되는 경사의 빙벽구간이 나온다. 이곳의 지형은 위는 넓고 아래는 좁은 깔때기 형상의 협곡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낙석이 치명적인 구간이다. 될 수 있으면 신속히 통과해야 하지만 산소가 부족한 고도라서 숨은 턱까지 차고 몸이 초조한 마음처럼 그렇게 따라 주질 않는다.

느린 동작이지만 그저 주의하고 순간순간 낙석을 잘 피하면서 차근차근 올라가야 했다. 빙벽, 암벽 혼합구간이다가 보니 호흡도 거칠어지고 체력 소모도 극심하다. 여기서는 체력이 급속도로 고갈되어 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동작은 취하지만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 협곡구간을 빠져나오자 캠프2가 나타난다. 텐트를 설치할 만큼의 공간이 없어 설벽면을 동굴처럼 파내 만든 캠프 사이트는 등반에 지친 대원들의 안락한 보금자리다. 한국팀은 텐트 2동을 설치하고 그 위쪽에 일본팀이 텐트 3동을 설치했다. 일본팀은 물자와 셀파가 한국팀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항상 캠프를 넓게 사용한다. 그들보다 부족함이 많은 한국팀은 악착같이 승부근성으로 밀어붙여서 그런지 일본팀 오사무 다나베 대장은 "헝그리 스피리트(Hungry Spirit)팀"이라고 말했다.

▲ 7100m에 위치한 캠프2 전경. 텐트를 설치할 공간이 없어서 설벽을 동굴처럼 눈을 파내고 텐트를 설치하였다. 대도시 특급 호텔을 능가하는 아늑한 휴식처다.
ⓒ 한국산악재단
켐프2는 바람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여러 가닥의 로프로 단단히 텐트를 고정시켜 놓았다. 그런데 오늘 올라와 보니 텐트가 강풍에 뒤틀려 있다. 먼저 도착한 안치영 대원이 텐트를 다시 정비하고 휴식을 취했다. 시간은 오후 2시 30분쯤 되었다. 잠시 후 벌써 텐트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텐트 밖에서는 강풍이 몰아치고 낙석소리가 사방에서 난리를 쳐도 캠프라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어서 그런지 꿀맛 같은 단잠이다.

일본대는 어제 대원들이 거의 탈진상태라고 캠프2에서 하루 더 쉬어 간다고 한다. 우리 한국대는 캠프2에서 4~5시간 거리에 있는 7500m의 임시캠프3 자리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아침 7시에 안치영 대원과 파상 보티가 출발하고 강기석 대원은 뒷정리 후 조금 늦게 출발했다. 일본대는 자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큰 소리로 불러 보았다. 잠시 후 바람을 타고 "굿 럭"(Good Luck)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대암벽 밑으로 횡단하여 직벽을 올라야 한다. 횡단하면서 쳐다본, 하늘을 찌르듯 압도하는 대암벽의 위용에 전율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처럼 압도하는 고산거벽의 대암벽을 등반하며 전율을 느끼는 안치영 대원은 분명 가장 행복한 산사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캠프2에서 7500m의 임시캠프3로 가기 위하여 대설벽구간을 횡단하는 대원들.
ⓒ 한국산악재단
안치영 대원은 횡단을 마치고 암벽으로 된 직벽을 오르다가 아래 강기석 대원과 셀파를 내려다보았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8미리 로프에 줄줄이 대원들이 매달려 있다. 강풍이 불 때마다 등반을 중단하고 순간 엎드려 있는데 바람을 타고 대원들이 하늘거리며 흔들린다. 흔히들 대자연 앞에 미미한 인간이라고 말하는데 아마 이런 경우인가 보다.

임시캠프3는 비좁은 지역이고 낙석이 있어 그야말로 임시 캠프로 사용하고 있다. 눈보라와 강풍이 몰아치는 속에서 텐트를 여러 가닥의 로프로 덮어씌워 견고하게 고정하는 작업을, 거친 숨을 토하면서 간신히 했다. 그런데 내일 다시 이 텐트를 걷어서 짊어지고 올라가 캠프3에서 다시 사용해야 한다.

산소가 희박한 데서 텐트를 철거할 일이 한편으로 근심이라고 농담을 하였다. 그러나 강풍에 견고한 텐트와 철거에 용이한 텐트라는 우리의 소박한 두 가지 욕망에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주어지지 않는 선택이었다.

▲ 베이스캠프에서 등반 정보와 데이터를 분석하는 김형일 등반대장. 로체남벽 등반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 등반대장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충직 대장은 말했다.
ⓒ 한국산악재단
텐트 외부는 강풍이 몰아치고 안은 비좁은 공간이지만 침낭 안에 들어간 대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이곳은 대도시 특급호텔 부럽지 않았다. 하루의 피로가 몰려드는데 베이스캠프에서 김형일 등반대장이 내일 일정에 대해 무전으로 알려준다. 위성으로 받은 일기예보와 등반에 소요될 장비, 루트상태에 대한 설명이다.

김 대장은 2차례의 탈레이샤가르 북벽원정대장과 트랑고 타워, 유럽알프스 등반을 한 다양한 경험의 월등한 거벽 등반가이다. 이충직 대장은 이번의 로체남벽 등반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형일 등반대장의 노련한 경험과 추진력으로 가능했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김 대장은 로체남벽에서 추락하는 등 2번의 부상으로 통쾌한 등반을 하는데 애로를 겪었다. 내일은 정상 공격을 위하여 마지막 캠프3으로 올라가는 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기록은 안치영 대원이 맡았습니다. 'invincible 난공불락' 한국 로체남벽 원정대 홈페이지는 www.invincible.or.kr 입니다.


태그:#로체남벽, #엄홍길, #로체원정대, #최고의산악인, #안치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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