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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인류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이제 종교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다. 오직 자본주의밖에 없다. 자본주의만이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인류의 지배자이다. 한때 종교가 그 다음엔 과학이 인류를 지배하다가 조금씩 유효기간이 선명해지듯이 자본주의의 지배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벗어나기 힘든 자본주의의 폐해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인간은 더 이상 영혼과 정신을 지닌 숭고한 존재가 아니다. 신을 빼닮은 모습도 아니다. 동물이나 기계와 다른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상품의 시장에 스스로 상품이 되어 진열되어 있다. 이 사태는 그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저런 자본주의에 대한 암울한 귀신들이 내 머릿속을 드나들 때 문득 발견한 책이 나카자와 신이치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이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자본주의의 절망적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 같은데 저 무모한 일본인 철학자는 무슨 허풍을 떨라고 저러는 것일까? 이런 선입견이 앞섰다.

이 책 18페이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경제현상의 특성으로 보이는 합리성은 표면에 나타난 가식적인 표정에 불과합니다. 경제는 표면에 가장 가까운 층은 합리성에 의해 포장되어 있지만, 그 뿌리는 어두운 생명의 움직임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전체성'을 갖춘 현상입니다."

'아니 자본주의 혹은 경제 현상의 밑바닥에 합리성 외에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두운 생명의 움직임"이라고 표현하다니 참 묘한 끌림을 유발하는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보통 한 달 정도에 한 권 읽는 느린 독서 속도인 내가 그날은 새벽이 지나도록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를 놓질 못했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도록 만들었다. 아니 너무 궁금하였다. 자본주의 밑바닥에 이기적 합리성 외에 다른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 인류를 자본주의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줄 수 있을지….

나카자와 신이치는 이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어린 사환의 신>이라는 소설에 대한 인용부터 시작한다. 초밥이 너무나 먹고 싶은 어린 사환이 초밥집에 가서 자신이 지닌 돈보다 많기만 한 초밥 가격을 물어보기만 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옆에서 초밥을 사 먹고 있던 웬 국회의원이 그 어린 사환 몰래 초밥 값을 지불하고 사환이 마음껏 초밥을 먹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서도 이 국회의원의 마음은 왠지 쓸쓸하기만 하다는 것.

나는 이 쓸쓸함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래, 아무리 선행을 베풀어도, 그리고 한 명의 가난한 사람을 구해 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여전히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굶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니 쓸쓸할 수밖에'.

그런데 나카자와 신이치는 다르게 해석했다. 불완전한 인간이 신이나 할 수 있는 선행을 베풀었으니 과분한 행동에서 오는 쓸쓸함이라고….

그렇다면 신이나 베풀 수 있는 선행을 인간은 베풀 수 없단 말인가? 나카자와 신이치는 베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표면에 있는 이기적 합리성 밑바닥에는 아직도 여전히 신적인 사랑, 베품, 정성을 다함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동서양 종교와 학문가 거듭 역설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폭넓고도 깊게 공부하는 사람이란 걸 우선 느끼게 된다. 그는 동서양 종교와 학문을 두루 섭렵한다. 경제학과 심리학, 인류학, 철학, 문학 어느 것 하나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다. 여러 종교와 학문,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다양한 증거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자본주의의 구렁텅이에서 인간을 구할 수 있는 힘은 인간 안에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순수 증여"의 힘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하이데거의 '존재'라는 개념에는 우리의 순수증여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면에서 나와 밖을 향해 스스로를 열어가려고 하는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갇혀 있는 채 나타나지 않은 것을,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세계를 향해 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해가는 것, 이것이 '존재'입니다. 그것은 순수증여의 근원에 존재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결국 자본주의의 이기성, 도구적 합리성, 그 불타는 욕망에의 홀림 등 많은 폐해로부터 인간이 스스로 구원될 수 있다고 본다. 인간 속에 이미 자본주의적인 것과는 다른 순수증여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 순수증여의 힘이 인간 사회에 언젠가는 발현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인간 안에 자본주의적인 이기적 본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대척적 지점에 관용하고, 연민하고 자선할 줄 아는 선한 본성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새벽 하늘을 보며 '드디어 이 구질구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샘솟는다. 그런데 흥그러운 기분도 잠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데 과연 어떻게 이 더럽고 이기심으로 들끓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순수증여를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과 절망감이 다시 엄습해 온다.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물신 숭배의 허구와 대안 - 카이에 소바주 3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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