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의 핵심은 군사력에 있다. 엄격한 규율과 규범, 그리고 당대의 최첨단 전략과 기술로 무장한 로마 군단과 미군은 일견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로마와 미국은 그 힘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방법을 달리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내전을 최종적으로 종식시키고 제정의 기반을 확립했다. 동시에 급격히 팽창한 군대를 과감히 축소했다. 그는 더 이상의 영토 확장보다는 현재 점유하고 있는 영토를 보존하는 수성의 전략을 채택한다. 확장의 욕구를 억제하고 자신들의 힘의 한계를 자각했다는 점에서 현명한 선택이었다.
제국에서 방어를 담당하는 군단기지를 현재의 미군기지와 비교하면 로마와 미국의 정책 차이가 선명히 드러난다. 군단기지는 로마군단이 주둔하며 전략적 거점의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또한 이곳은 로마화를 파급시키는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거점 역할도 했다.
군단병사들은 장기적으로 주둔하면서 점차 속주민과 융합했다. 이는 지역의 안정 확보는 물론 새로운 인적 자원을 제국의 중심부로 유입시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냈다. 로마는 속주를 제국의 일원, 즉 '공동운명체'로 받아들였다. 이것이야 말로 로마의 합리성과 개방정신이 안전보장의 영역에 적용된 빛나는 사례다.
현재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미군 기지도 로마군단기지와 유사한 전략적 목적을 띄고 있다. 그러나 미군기지는 단기적으로는 군사적 거점으로 유용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패권유지에 악영향을 끼친다.
미군은 오만한 점령자로 군림하며 수많은 문제를 양산한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주둔국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문제는 물론 폭행, 살인 환경오염 등 그 범위도 다양하다.
지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주둔군지위협정(SOFA)과 같은 불평등한 제국의 룰에 의해 두둔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이러한 기지정책은 동맹국에서는 동맹의 균열을, 중동과 같은 적대지역에서는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시오노 나나미가 말한 '총체적 안전보장'이란 군사적 힘만으론 이룩할 수 없다. 개방과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피지배 민족 혹은 동맹국을 진정한 파트너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미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 군사혁신(RMA), 그리고 MD계획도 이러한 사고의 전환 없이는 결코 확실한 안전보장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붕괴된 '호모 폴리티쿠스 아메리카'
로마인들을 '정치적 인간'(호모 폴리티쿠스)으로 본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에 나도 공감한다. 로마인들은 화려한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중해의 패권까지 장악한다. 경직된 정치체제로 인해 몰락한 그리스의 폴리스 도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국인들도 로마인 못지않은 정치적 인간들이다. 미국의 건국 역사 자체가 바로 정치적 박해를 피하기 위한 항거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그들이 이룩한 정치체제는 바로 '민주주의'다.
이 민주주의야말로 미국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로, 냉전시기에는 반공의 전사로서 미국이 이데올로기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민주주의 때문이었다.
지금도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의 이미지다. 이라크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미국이 표면에 내세운 것도 이라크 내의 민주주의의 회복이었다.
그런데 9·11 테러 이후 민주주의의 원리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없이 전쟁을 결정했다. 그리고 테러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애국법'을 제정해 시민들의 일상까지 감시하기에 이른다. 미국 역사상 유래 없는 시민적 자유에 대한 침해가 벌어진 것이다.
행정부의 권력남용에 대해 의회는 견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행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몸 사리기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의회 권력의 축소와 시민적 자유에 대한 침해는 로마 공화정의 몰락을 연상케 한다.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이후 각지에서부터 엄청난 부가 로마로 유입된다. 이로 인해 로마 사회는 자영농이 몰락하고 금권층과 빈민층으로 양극화된다.
자영농, 다시 말해 중산층이 몰락했다는 것은 시민적 자율성의 쇠퇴를 의미한다. 더군다나 경직화된 원로원은 시민들의 불만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결국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같은 군벌이 득세하는 상황을 만들어 냈고 최종적으로 공화정을 붕괴시킨다.
시오노 나나미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카이사르는 미래를 내다본 진정으로 현명한 지도자였다고 말한다. 이후 200여 년간 지속된 팍스 로마나의 황금기는 제정으로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제정은 근본적으로 시민적 자율성이 거세된 체제였다는 점에서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현명한 황제에 의해 통치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때는 그 위기를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인의 황제가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군대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을 때 과연 누가 견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황제·원로원·군단·시민의 4자간 견제역할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도 제정 초기에나 가능했던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원로원과 시민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미국도 앞으로 의회의 역할이 계속 축소된다면 결국 소수의 권력층과 기업, 그리고 군산복합체가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가져올 패악을 이미 역사를 통해 수없이 목격했다. 미국이 의회의 권력을 다시 강화하고 시민적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결국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지 못해 무너질 수도 있다.
제국의 하위동맹국, 또 다시 희생물 될 건가
로마가 패권을 장악할 당시의 세계는 야만적인 서방지역과 문명화되기는 했지만 군주제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오리엔트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자율성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로마가 이들을 정복하고 지중해를 재패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어떠한가. 오늘날 세계는 너무도 다양하고 광대해서 한 국가가 이를 완전히 지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대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에 대해 더욱 민감하다. 따라서 미국의 한계는 국지적 헤게모니의 행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마저도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어렵게 되고 있다.
미국은 쇠락하는 패권을 재확립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패권유지전략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물론, 한미FTA를 통해 경제적 지배권을 다시 가져가려 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의 패권 전략에 동조해 앞으로도 하위동맹국으로 계속 남아야 할까. 제국의 하위동맹국으로 남는 것은 동북아에서 벌어질지도 모르는 패권경쟁에서 또 다시 희생물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동반한다.
지금은 변환의 시기다. 역사는 오늘과 같은 변화의 시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제국의 침략전쟁의 동원을 거부하고 경제적 종속에서 탈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국의 시대를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