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풍경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빚지기 쉬운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모든 가치는 돈으로 표현된다.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부 부자들을 제외한 보통 사람들은 벌어들이는 돈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출을 받으며 카드를 긁는 등 어디에서든 빚의 유혹을 쉽게 느낀다.

신용불량자가 넘치는 사회, 그리고 돈을 못갚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물론 절박한 이유에서 돈을 빌리는 일도 부지기수지만, 냉혹한 돈의 논리에 인정이란 있을 수 없는 일. 돈의 냉혹함과 악랄함을 이겨낼 장사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화제가 된 만화 원작의 드라마 <쩐의 전쟁>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현실을 낱낱이 보여준다. 갈 데까지 간 나머지 사채까지 빌려 집안을 쑥밭으로 만드는 사례, 그리고 "돈 받을 자는 돈을 줘야 할 자보다도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채업자들의 이야기 등 돈에 얽힌 인간의 탐욕과 악랄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 크건 작건 빚이 있다. 그리고 요즘 TV에서 그렇게도 자주 노출되는 대출 광고의 유혹에 넘어갈 여지가 있음을 드라마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에는 우리를 그토록 짓누르는 '빚'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어느 '창조적 천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황제'의 독일식 명칭 '카이저(Kaiser)'의 언어적 뿌리를 제공한 사내. 전략의 귀재였지만, 한편으로는 탁월한 문학가의 자질도 뽐냈던 사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야기였다.

카이사르가 이용한 돈의 심리학, 그리고 인간의 심리학

ⓒ 한길사
'천재'가 아닌 우리들 속에서, 돈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흥청망청 사치를 즐기다가 빚에 짓눌리는 경우도 있으며 집을 장만하고 기울어가는 사업을 다시 부활시키려다가 빚더미에 깔리는 경우도 있다. 빚은 그렇듯 우리의 일상을 그리고 본능과 욕심을 파고 들면서 눈덩이처럼 커진다.

은행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게 되고,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사채를 쓰게 마련이다. 갈데까지 간 사람들이 마지막 배출구로 빌려쓰는 것이 '사채'지만 그 살인적인 이자율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뭐 하나 나올 것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는 판에 무슨 수로 그 이자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면에서 카이사르는 천재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그 역시 '사채'를 통해 막대한 돈을 빌려썼다. "집으로는 빚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방침이었다니, 돈을 빌릴 수 있는 창구는 역시 담보 없이 빌릴 수 있는 '사채' 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가 에스파냐 총독으로 임명돼 부임지로 떠날 때, 몰려온 빚쟁이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출발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던 적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그에게는 '크라수스'라는 부처님이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에 서술된대로, 카이사르와 크라수스의 관계는 특별했다. 카이사르가 졌다는 그 막대한 빚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부분이 크라수스의 돈이었으며, 심지어는 다른 창구에서 빌린 돈의 '보증'까지 섰다고 하니 카이사르에게는 크라수스가 부처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평범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인간이었다는 점은 '돈'에 얽힌 <로마인 이야기>에서의 네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의 글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리사욕이 됐든, 어쩔 수 없는 간절한 이유가 됐든, 어쨌든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유'로 돈을 빌리지만 그는 그 '개인적인 이유'의 필요성을 크게 못느꼈던 사람이었다.

호화저택을 짓거나 별장을 사는 것도 아니고, 뻔한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그가 진 빚은 대부분은 공직자로서 시민들을 위한 공공 사업이나 시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검투사 시합, 선거 운동 등에 활용됐다고 한다.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는 펀드매니저 '금나라'(박신양 분)의 직장 상사가 '금나라'를 향해 "이 바닥에서 사채쓰다 발각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고 일갈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채'는 어찌 됐든 개인적인 이유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거나, 돈에 관한 신용을 잃었을 때 찾아가는 마지막 창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직자로서도 마찬가지다. 직업적인 관점에서 '신용'이 가장 중요한 직업인이 '사채'를 쓰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그렇듯 '공익적인 목적'에서 빚을 졌다는 점에서 정적들도 그것을 약점삼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로마인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물론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빚의 규모에 따라 채권자와 채무자의 상관관계도 역전될 수 있다"는 것. 카이사르에게 변고가 생기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사람은, 그 스스로도 대형 채권자였으며 다른 빚까지 보증을 책임진 크라수스일 수밖에 없다. 카이사르는 그렇게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며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짓누를 수 밖에 없는 크라수스를 오히려 자신이 더욱 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 역시 <쩐의 전쟁>에서 확인되곤 한다. "돈 받을 자는 돈을 줘야 할 자보다도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채업자의 금언, 달리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거액의 빚을 진 사람들 중에는 돈 나올 구석이 아무것도 없는 나머지 극단적인 시달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배짱이 남다른 사람들 중에는 "배째라"는 심정으로 오히려 사채업자를 압박하는 사람도 있다.

카이사르의 '돈'에 대한 남다른 배짱은 전쟁 중에도 확인되곤 하는데, 그가 저술한 <내전기>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대대장이나 백인대장들에게 돈을 빌려 병사들에게 보너스로 주었다. 이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지휘관들은 돈을 못 받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웠고, 총사령관의 선심에 감격한 병사들은 전심전력을 기울여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돈'이라는 인생을 짓누르는 명제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다. 돈에 시달리고 짓눌리는 사람은 많아도, 부자가 아니면서도 돈을 활용해 인간의 심리를 조율하는 사람은 쉽게 찾기 어렵다. 세상에, 빚을 이용해 이질적인 두 집단의 지지와 열성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

돈을 정복하는 일, 그건 돈을 많이 버는 일만 일컫는 말은 아닐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한다 하더라도, 돈을 매개삼아 그보다 더 큰 효과를 유도하며 액수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소득을 얻는 일, 어쩌면 그거야말로 돈을 정복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카이사르는 그런 의미에서 돈의 정복자, 그리고 빚의 정복자인 셈이다.

정복할 것인가, 정복당할 것인가

▲ SBS 드라마 <쩐의 전쟁>
ⓒ SBS
<쩐의 전쟁>을 보면, 돈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금나라'는 스스로를 "돈에 한맺힌 놈"이라고 소개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했지만 사채업자로서의 그의 일상도 결국은 '돈의 노예' 그 이상 이하의 의미를 갖진 않는다.

빚을 진 사람도 그렇지만, 받아내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빚의 규모에 따라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할 정도로 악랄해지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품위와 '뚜렷한 악랄함'은 반비례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카이사르는 진정한 의미의 '돈의 정복자'라 할 만하다. 막대한 빚을 졌으면서도 궁지에 몰린 적도 없으며,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도 없었다. 품위를 만끽하고, 전형적인 인간관계도 뒤집을 줄도 알았으며, 돈을 이용한 용병술의 극치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세상을 살면서 돈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건 카이사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와 우리의 차이는 분명하다. 단순히 돈에 매몰되는 것인가, 아니면 돈 속에 숨은 더 깊은 의미를 탐색해 오히려 이용할 것인가. 그거야말로 카이사르와 우리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정복할 것인가, 정복당할 것인가. 작은 인식, 그리고 남보다 더 깊은 시각이 그 작은 차이를 더 크게 결정지을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의 냉혹함 속에 숨은 인간의 본질을 깨닫는다면 '돈으로부터의 자유'도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수천년 전에 살다 간 어느 천재가 우리에게 남겨주는 '돈의 교훈'이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 이야기 글쓰기 공모작' 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전15권 세트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2012)

이 책의 다른 기사

인터넷 서점의 이상한 계산법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