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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한 카이사르의 문장을 본받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자. 로마에는 신이 없었다. 그것이 1200년의 역사를 이어간 세계제국 '로마'를 건설한 원천이었고 힘이었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 세계 제국 로마의 초석과 원동력을 말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문구가 말해주듯 그들의 인프라 건설을 으뜸으로 꼽거나 로마인(특히 카이사르)들의 관용을 맨 앞에 놓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일컬어지는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지적하는가 하면, 로마의 자랑인 중무장보병을 구성하는 시민과 시민사회의 건강성에서 그 근원을 찾기도 한다. 모두가 옳은 지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날의 개념으로서의 신을 가지지도 섬기지도 않은 로마인들의 현실 인식에서 세계 제국은 가능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로마 신화는 사실 그들의 신화라기보다는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세계를 로마가 정복함으로 생겨난 로마적 그리스 신화에 불과하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 신을 제외하고 로마 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은 유피테르와 제우스처럼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짝을 이룬다. 모두가 인격신(人格神)이다. 그들은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고 사고한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분노하는 인간의 모습과 진배없는 신이다. 바로 그 인격신들에 의해 로마인들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양식은 결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중심 혹은 현실을 중시하는 로마인

로마는 다신교 다민족 국가였다. 로물루스가 로마의 일곱 언덕에 성채를 세운 이후로 로마는 에트루리아인, 그리스인, 갈리아인, 카르타고인 등 많은 민족과 국가를 정복해가며 그들의 세계 제국을 완성해갔다. 그때마다 새로운 신은 생겨났고 로마는 그 모든 신들을 자신들의 신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열린 사고는 도시국가 로마가 세계제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이 되었고,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보다는 인간과 함께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격신을 숭앙한 태도에서 그들의 인간중심사회와 현실 중심 사고가 싹텄다. 저자의 지적처럼, 그것이 "몸집에서는 게르만족에게,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에게, 상재에서는 카르타고인에게, 문명에서는 그리스인에게 뒤졌던" 로마인을 세계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여러 신들은 그들 운명의 보조자에 불과하였고 공동체사회의 질서를 위해 개입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영묘를 만들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무덤조차 가지지 않았을 만큼 로마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이처럼 현실중시의 세계관은 곧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과 로마인들의 개방성을 낳았다.

유일신을 믿는 유대국을 사실상의 속주(동맹국이었지만)로 지배했음에도 그들은 유대인의 유일신 사상을 존중했다. 로마는 모든 피정복민족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일관했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고집하거나 이식하지 않았다. 갈리아, 에스파니아 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정복해 속주로 삼고 총독을 파견하였지만, 실질적인 지배는 부족장이나 왕을 내세운 대리지배 간접지배 방식을 고수하였다.

인간중심과 현실중시의 태도에서 비롯된 이러한 로마의 세계국가 건설이 지리상의 발견 후 활발해진 식민제국의 건설과 결정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기에 행해진 서구제국의 식민지 건설이 자신들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이식하고 식민지의 자원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다면, 로마제국의 세계화는 로마인의 생활방식이 그 땅에 물이 스며들 듯 진행된 자발적 로마화였다.

로마인들은 그러나 다른 민족의 문명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에트루리아인들에게서 배운 기술력은 곧 로마 가도의 건설이라는 세계제국의 초석으로 깔렸고 그리스인에게 배운 해양기술은 농경민족인 로마인이 지중해, 나아가 유럽과 아프리카 소아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로마인들은 무엇보다 공존공영의 가치를 숭상한 민족이었다. 그것이 인간중심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팍스 로마나'도 결국 이러한 로마인의 세계관이 낳은 산물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그들의 포용력 앞에서 세계는 점차 하나가 되어갔다. 그것은 곧 세계의 안정을 의미했다.

로마세계의 구심력으로 저자가 누차 강조하는 '클리엔테스'와 '파트로네스'의 특수한 신분질서 역시 로마인들의 인간존중의 사고에서 비롯된 신뢰를 밑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노예 혹은 출신지역이나 영지 내의 하위시민계급을 지칭하는 클리엔테스가 오늘날의 고객을 의미하는 클라이언트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그대로 로마 사회의 인간존엄을 보여주는 척도다.

신은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명예가 로마사회를 규율하는 유일한 가치기준이었다. 그 명예가 있었기에 로마의 중무장보병은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확실한 문민지배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실패한 독재자 술라를 제외하고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군단도 수도 로마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인간중심의 가치관은 로마사회 신분질서의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자식이 있고 일정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노예는 시민이 될 수도 있었다. 유력한 평민귀족도 생겨나고 평민집회의 결의는 원로원의 권고처럼 국가정책으로 구속력을 가질 수 있었다. 피정복민족 역시 점차 로마의 시민권자로 흡수되어 로마사회의 일원이 되어갔다. 여러 민족 다양한 문화 그러나 하나의 세계는 바로 인간이 그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마인이야기>에서 만나는 니체 혹은 그의 초인(超人)

ⓒ 도서출판 한길사
세계제국 로마에는 모세의 신, 아브라함의 신은 없었다. 메시아 예수는 제정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고 난 후에야 출생하였다. '신은 없었다'는 필자의 선언은 그런 이유로 옳다.

그러나 기원후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니체에게는 아브라함과 모세의 신, 그리고 그의 독생자 예수가 있었다. 그러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할 수밖에. 로마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니체를 등장시킨 까닭은 필자가 <로마인이야기>를 읽으며 니체, 아니 그의 초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니체 철학의 기저는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극복이다. 그는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에 의해 자라온 유럽 문명의 몰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민하게 감득한다. 그 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피안적(彼岸的)인 것에 대신하여 차안적(此岸的)·지상적인 것을, 즉 권력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한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입장에서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권력을 쇠퇴시키는 그리스도교 도덕이나 불교 도덕을 수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하여 배척하고, 삶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기성가치의 전도(顚倒)를 지향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제창하였다.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초인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로마에는 모세의 신이 없었기에, 즉 내세의 구원에 기대어 현실의 의지를 박약하게 하는 신이 없었기에 로마인들은 현실을 중시할 수 있었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포용적 세계를 건설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명의 충돌은 각기 다른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한 세계의 충돌이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거나 지배하려 들 때 비극은 잉태한다. 카이사르가 입신의 발판으로 삼은 최고제사장은 종신직일망정 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로마시대의 제사는 인간을 위한 축제였지 인간을 벌하거나 규율하는 정신의 감옥은 아니었다. 중세의 성직자들이 권력화되었을 때 세상의 암흑은 도래하였다.

로마의 세계화가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나 오늘날의 중동전 같았다면 로마는 그 장구한 세월을 영속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들 사이의 싸움이었기에 팍스 로마나는 가능했다. 그러나 신들의 대리전으로 변한 오늘의 전쟁은 따라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되지 못하고 세계 곳곳의 반발을 불러 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세워야 할 것은 인간의 제국이지 신들의 제국은 아닌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냉전이 사라진 시대에,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와 전쟁에서 종교적 갈등과 반목을 걷어내기는 어렵다. 믿는 그들이야말로 죽으면 가게 될 신들의 제국을 왜 그리도 이 땅에 세우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인간이 없으면 그곳이 곧 지옥이다. 로마제국의 주춧돌이 된 카이사르도, 아버지의 제국을 반석 위에 세운 아우구스투스도 모두가 인간이었고 인간의 제국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들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이었고 그들은 또한 권력에의 의지로 끊임없이 자기 극복을 위한 일생을 살았다.

카이사르와 그의 시민군이 갈리아의 혹한과 굶주림을 참아가며 9년이 넘는 시간을 희생한 것도, 한니발의 침공 당시(2차 포에니 전쟁) 그 긴 세월동안 로마인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국력을 한데 모으며 절치부심한 것도, 아우구스투스가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딸까지 유배 보내는 아픔을 감내한 것 모두가 인간의 제국 로마를 위한 처절한 자기희생이었다.

그런 초인들의 불멸의 의지가 제국을 세우고 지켰다. 그런 다음에야 죽어서 신격(神格) 카이사르, 신격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나는 <로마인이야기>에서 니체를 만난다. 니체의 초인에서 오늘의 지도자상을 발견한다. 그런데 세상은 어떤가? 신들은 이 세상을 언제나 지옥으로 만들고 그 대리인들은 평화를 부르짖으며 오늘도 방아쇠를 당긴다. 야누스 신전의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모두 인간임을 왜 모르는 것인지.

덧붙이는 글 | *<로마인이야기> 글쓰기 대회 응모글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로마인이야기,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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